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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신약성경의 다섯 가지 이야기

예수는 변두리에서 태어났다.

by 홍도사 2022. 1. 31.

예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선명하지 않다. 대다수의 학자가 첫 번째 복음서라고 추정하는 마가복음은 예수의 탄생을 다루지 않는다. 예수의 탄생도, 유아기도, 청소년기 혹은 청년기의 사건들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가복음이 처음으로 소개하는 예수의 모습은 공생애 직전의 예수다. 그가 어떤 환경을 겪으며 어떤 생각 속에서 자라났는지 침묵한다. 마가복음은 인간 예수를 소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단지 예수의 몇몇 모습을 통해 그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데 목적을 갖고 있다.

마태복음은 이런 마가복음의 침묵과 다소 대비된다. 그가 소개하는 첫 장면은 예수의 족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뿌리에서 온 예수를 소개하는 족보를 통해 예수에 대한 기본 이미지를 구축한다. 그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유사한 인물이며, 하나님 나라의 메시아 다윗과 유사한 인물이라 암시하고 있다. 족보 이야기를 마친 마태는 예수의 부모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정녀 설화>가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잉태 시점부터 <성령>으로 말미암았다는 기록은 마가복음의 의도와도 일치한다. 예수는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며, 또한 하나님이다.

잠깐 등장하는 유아기의 이야기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아기 예수에게 동방으로부터 점술가들이 찾아온다. 그들이 찾아와 <이스라엘의 목자>라며 경배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실 다윗과 같은 메시아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하나님의 보호로 말미암아 사울에게서 피했던 것처럼, 예수 또한 왕이 되기 전에 하나님의 보호로 말미암아 애굽으로 피난 가는 장면이 흥미롭다. (또한 이는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갔다가 다시 애굽을 탈출해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이야기와도 상통한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탄생과 유아기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메시아이심을 부각한다.

누가복음은 마태복음과 함께 하모니를 이룬다. 마가복음이 시작점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예수의 이야기를 소개한데서 착안한 것 같다. 누가복음은 의도적으로 세례 요한의 유아기 시절과 예수의 유아기 시절을 병행해서 들려준다. 세례 요한의 어머니와 예수의 어머니는 친족 관계이다. 세례 요한과 예수는 모두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으로 잉태한 경우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만나 서로 기뻐하며 마리아가 노래하는 장면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예수의 이야기를 암시한다.

또한 누가복음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예수의 탄생이 베들레헴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보도한다. 정말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까?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가 <베들레헴의 예수>가 아니라 <갈릴리 나사렛의 예수>로 불렸다는 점이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기거하던 예수의 부모는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으로 말미암아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다. 또 거기서 예수를 낳게 된다. 이는 마태복음의 이야기와 서로 화음을 만들어낸다.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메시아다. 다윗의 계보에 있다. 하나님의 왕국을 재건할 존재다.

마태복음에서는 점술가들이 찾아왔다면 누가복음에서는 목자들이 찾아와 예수를 경배한다. 이 또한 목자였던 다윗을 떠올리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가 성전에 가서 정결예식을 받는 장면을 기록한다. 경건한 사람 시므온과 여선지자 안나는 예수를 비범한 존재로 예언한다. 또한 열두 살 시절의 예수 이야기 또한 누가복음은 들려준다. 한낱 열두 살의 예수는 성전에서 부모와 떨어져 오랜 시간을 머물며 선생들과 토론했다는 얘기다. 누가복음이 기록한 공생애 이전 예수의 이야기 모두는 비범하다는 묘사로 점철된다.

요한복음 또한 마가복음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탄생 혹은 공생애 이전의 예수의 행적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각자 예수 탄생의 이야기와 유아기 예수의 행적을 알려주지만 자료는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모든 복음서가 결국은 <예수는 메시아> 혹은 <예수는 하나님>이라는 신학적 선언을 위해 기록되었다. 따라서 공생애 이전 예수의 자료 또한 순수하지 않은 역사적 사료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정말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까? 그는 정말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을까? 그는 태어난 직후에 정말 동방박사와 목자들의 경배를 받았을까? 알 수 없다.

복음서 자료들이 신학적으로 채색되었다손 치더라도 거부할 수 없는 몇몇의 유의미한 자료들이 있다. 그가 <갈릴리 나사렛> 태생이라는 자료다.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했으며 갈릴리 나사렛 사람이라 불렸다. 또한 아버지 요셉의 아들이라기보다는 마리아의 아들이라 불렸다. 또한 그는 목수의 아들 혹은 목수라 불렸다. 예수가 베들레헴 태생이라는 정보와 함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은 또한 목자들이 경배하는 장면이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메시아를 경배하러 온 동방의 점술가와 비교하자면 사뭇 초라한 사람들이다. 목자들에게는 점술가들처럼 황금과 유향과 몰약도 없으니 말이다.

이처럼 예수는 천한 태생을 지녔다. 본문을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고도 쉽게 추정할 수 있는 바다. 그를 둘러싼 그림은 중심지가 아닌 변두리다. 그가 요셉의 아들이 아닌 마리아의 아들로 불렸다는 사실은 아마도 아버지 요셉이 빨리 죽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당시 1세기 결혼풍습에 비춰보면 마리아는 젊은 여인이며 요셉은 늙은 남자였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만약 그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면 목수일을 통해 집안을 먹여 살렸어야 했을 터. 아마도 헤롯 성전 보수공사에 어쩔 수 없이 참여했던 노동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니였을까?

공생애 시절 예수 주변에는 부적절한 이들이 많았다. 주요 제자들은 대다수가 갈릴리 어부 출신이다. 삶의 희망을 박탈당하고 젤롯당에 가담했던 이도 있었다. 먹고살기 위해 민족을 배반하고 세리였던 이도 있었다. 주변에 몰려든 이들은 창녀였고, 귀신 들린 자였고, 문둥병자였다. 사회의 변두리로 몰려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다. 그들을 제자로 삼고 가족으로 삼은 이유는 예수의 태생적 환경이 변두리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그의 배경은 한낱 갈릴리란 사실은 숨길 수 없다. 

갈릴리는 북이스라엘에 속한 지역이었다. 예루살렘 중심의 종교 지도층에게는 결코 깨끗할 수 없는 지역이다. 기원전 4년부터 시작된 헤롯 안티파스의 통치 이후에는 헬라적 도시로 재건설되었다. 갈릴리 사람들은 대다수 예루살렘 성전과 동떨어져 살았다. 예루살렘 종교 지도층의 지배 또한 받지 않았다. 반면 세금의 수탈로 말미암아 갈릴리 주민들의 국가에 대한 반감은 짙어져 갔다. 또한 기원전 4년경 갈릴리 세포리스에서는 2000명이 십자가에 달렸다. 갈릴리의 유다로 말미암아 반란이 일어났고 로마가 진압한 것이다

예수는 변두리에서 태어나 변두리에서 자라났다. 또한 변두리의 억눌린 사람들 곁에서 성장했다. 평범한 지역에서,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지는 않았다. 중심지가 아닌 변두리에서, 유복하고 따스한 환경이 아닌 박해와 억압이 있는 환경에서, 시대가 변화와 혁명을 필요로 하던 곳에서 그는 태어났다. 그가 십자가에 달린 것은 분명 필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