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는 유명합니다. 매번 개봉되는 영화마다 흥행입니다. 캐릭터에 대한 열광도 뜨겁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블 스튜디오 영화의 강점은 ‘네러티브’에 있습니다. 마블 스튜디오에서 개봉하는 영화는 공통의 세계관을 갖고 있습니다. 새롭게 개봉될 영화는 기존의 스토리 위에서 진행됩니다. 영화들이 개봉될때마다, 시간이 흐를 때마다, 마블스튜디오의 네러티브는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그 과정에서 팬들에게 주는 장엄함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경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시작은 (아마도) 아브라함 가정에서 구전되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이삭이 야곱에게 들려주던 조상들의 이야기. 이집트에 끌려간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모세의 지도 아래에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탈출과 함께 그들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후에도 이집트에서 탈출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정체성이 흔들릴 때마다 자신들의 이야기로 돌아갔습니다. 역사 속에활약했던 선조들의 이야기, 역사 속에서 실패했던 조상들의 이야기, 무엇보다도 그 이면에 숨어계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장엄한 역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한 과정이오롯이 성경에 담겨있습니다. 수천년간 이어진 역사의 흔적은 (마치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들처럼) 거대한 ‘네러티브’를구성해왔습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성경은 거대한 ‘네러티브’의 복합체입니다.
마이클 고힌과 크레이그 바르톨로뮤가 공저한 <성경은 드라마다>라는 책은 성경의 거대한 네러티브를 6막의 드라마로재구성합니다. 창조, 타락, 구속, 왕의 방문, 왕의 사자, 왕의 귀환. 이렇게 구성된 드라마는 기독교의 거대한 주춧돌이 됩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정체성이 어디로부터 기인하는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또한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성경을 통해 제시합니다.
간단히 성경의 이야기를 요약해보려 합니다. 그래야 기독교가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알 수 있을테니까요.
1막 창조.
성경의 시작은 창조로부터 시작됩니다. 어둠이 가득하고 무질서와 공허함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퍼집니다. ‘빛이 있으라’ 하나님의 말씀은 어둠 가운데 빛을 창조합니다. 무질서 가운데 질서를 창조합니다. 공허한 세계를하나님의 피조물로 가득채웁니다. 더 나아가 성경은 창조의 정점이 바로 인간이라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를 위탁받은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어둠을 물리쳤듯이, 인간 또한 어둠과 대적하며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만들었듯이, 인간 또한 질서를 튼튼히 세우며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의창조가 공허함 속에서 피조물들을 창조해냈듯이, 인간 또한 세계 가운데 번영을 일궈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의 정점인 인간의 사명입니다.
2막 타락.
하지만 창조 이야기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빛과 질서, 번영을 꿈꿔야만 했던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많이들 알려진 ‘아담과 하와’이야기 혹은 ‘선악과’이야기가 그 시작입니다. 이야기의 본질은 ‘선악과’에 있지 않습니다. 창조의 정점인 인간이 창조의 정신을 반영하지 못한 것에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인간이 창조의 질서를 거역하고 반대로 살아가기로 결단한 것에 있습니다.
성경은 끝없는 역사 속에서 끝없는 인간의 실패를 반복해서 들려줍니다. 어둠을 원하는 인간의 역사, 무질서를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역사, 번영과는 달리 파괴를 일삼는 인간의 역사를 들려줍니다. 오늘도 세계 속에서 반복되는 다양한 악의 문제들은 ‘타락’이라는 성경의 이야기 2막을 변주합니다.
3막 구속(Redemption).
하나님은 창조 이후에 뒤로 물러나 계시는 뒷방 속의 하나님, 이신론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히려 타락한 세상 가운데서, 타락한 인류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임을 지속적으로 보여줍니다.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인 것처럼 창조를 마치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지속적으로 드러내줍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의 역사를 돌이키기 위해 한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이 그 주인공입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한 하나님의 역사는 모세에게도, 다윗에게도 반복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일가를 선택하셨다면, 모세를 통해서는 민족을 선택합니다. 다윗을 통해서는 국가를 선택합니다.
물론 이러한 선택이 선한 결실로 자리매김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인간의 타락을 향한 부패된 열망은 강열했고, 선하게 헌신된 사람들보다는 그들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일가 안에, 모세의 민족 안에, 다윗의 국가 안에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구속의 드라마는 실패로 끝나진 않습니다.
4막 왕의 방문(Presence).
아브라함보다, 모세보다, 다윗보다 더 위대한 인물 (혹은 하나님 자신이) 온 세계의 왕이 되시는 꿈. 역사속 예언자들은 그꿈을 함께 꾸고, 그 꿈을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해서 선포해왔습니다. 인간의 근원적 실패를 교정하고, 창조의 결말이 펼쳐지는 꿈, 온 세계 가운데 정의가 올곧게 서고 평화가 확립되는 꿈. 어둠과 무질서와 공허함이 정복되는 꿈.
우리는 그 꿈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란 한 인물에게서 (혹은 하나님에게서) 성취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나신 작고 연약한 아기를 두고 성경은 ‘하나님의 방문/왕의 방문’이라 말합니다. 더 나아가 작은 아기의 탄생을 두고‘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나서 인간의 문제, 죄, 질병들을 치유하고 회복해나가십니다. 온 피조세계를 회복하시기 전에 각 개인을 회복시킨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치유와 회복의 정점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작고 연약한 아기는 십자가 위에서 연약한 모습으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누구라도 낙담하고 좌절할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를 두고 ‘왕위대관식’이라 말합니다.
왕께서 이 땅 위에 찾아오셔서 왕의 자질을 증명하고 온 인류의 왕이 된 사건이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왕이 되셨습니다!
5막 왕의 사자(apostle).
십자가는 로마의 사형틀에 불과했습니다. 로마제국을 비판하는 사람들, 더 나아가 로마제국의 전복을 꿈꾸는 사람들은모두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반역자의 무력함과 제국의 위대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은 십자가의 상징을 전복시킵니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를 죽이려 했지만 죽이지 못한 제국의 무능함, 더 나아가 ‘죽음’조차도 이겨낼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
부활을 목격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제국을 비롯한 모든 세상의 무력함인 동시에, 사망마져도 주관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입니다. 따라서 부활을 목격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왕의 사자가 되어 왕의 이야기를 선포하기로 결심합니다. 왕이 오셨고 제국의 십자가는 그를 죽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왕은 제국의 십자가를 이기셨습니다. 온세계의 창조주이자, 온 세계의 심판주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이제 로마제국을 비롯한 수많은 제국들의 거짓된 권세는 만방에 폭로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수많은 권력과 부를 자랑하지만 제국은, 세상은 결국 풀처럼 마르고, 꽃처럼 시들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왕 예수님만은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왕으로 영존하실 것입니다!
왕의 사자들의 선포는 간명합니다.
‘예수가 진정한 왕이 되셨습니다! 이제 왕 앞에 순복하시오!’
6막 왕의 귀환.
십자가에서 제국을 이기시고, 사망과 죄를 이기신 예수님은 스스로가 왕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하지만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온 세계 가운데 일어날 왕위 대관식을 연기하셨습니다. 왕의 사자들이 모든 민족과 열방에게 왕의 소식을 알리기까지 연기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왕의 권세와 위엄을 왕의 사자들에게 위탁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치유하시고 회복시키던권세와 위엄을 왕의 사자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왕의 사자들에게 ‘예수의 왕되심’은 공공연한 진실인 동시에, 아직은 감춰진 비밀입니다. ‘예수의 왕되심’을선포하며 치유와 회복의 권능을 발휘하며 왕위 대관식 이후에 도래할 ‘왕의 나라’를 경험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직 대관식 하지 않은 왕의 부재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왕이 되셨다는 소식에 반발하는 사람들과 대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왕의 사자들에게 있는 궁극적인 소망은 ‘왕위 대관식’이 머지않아 곧 열릴 것이라는데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왕의 자격을 증명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께서 곧 다시 귀환하실 것이라는데 있습니다. 귀환하실 그 때에는 온 열방과 온 민족이 왕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왕의 귀환을 거부하는 모든 이들은 처벌받게 될 것이고, 왕의 귀환을 환영하며왕의 사자로 살았던 이들은 보상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왕의 귀환을 믿는 모든 왕의 사자들은 왕의 나라가 이미 도래한 것처럼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둠 가운데 빛을, 무질서 가운데 질서를, 공허함 가운데 번영을 실현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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