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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평]하나님의 인간성, 칼 바르트.

by 홍도사 2017. 10. 18.


<하나님의 인간성>은 총 세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하나님의 인간성에 천착한 칼 바르트 후기 사상을 보여주는 세 편의 에세이 모음인데요. 


첫 번째 에세이는 [19세기 개신교신학]이란 이름으로 이전의 신학이 간과했던, 그리고 칼 바르트의 신학이 발전시켰던 지점을 그려냅니다.

두 번째 에세이는 [하나님의 인간성]이라는 이름으로 칼 바르트의 복음 이해의 기본인 (말 그대로) 하나님의 인간성에 대해서 다루는 작품입니다. 19세기 개신교신학이 말해왔던 인간의 종교성과 반대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 에세이는 [자유의 선물_개신교 윤리학의 기초]라는 제목인데요. 하나님의 자유를 강변하고, 그 자유가 인간에게 주어졌음을 강변하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기독교 신학자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을 내뱉는데 인상적이더라구요.


각 에세이 별로 인상깊은 내용들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바르트의 신학은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이 가졌던 맹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9세기 개신교 신학은 그 시대와 상황에 맞춰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었습니다. (이 지점을 바르트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치열한 노력은 결국 기독교 복음을 시대와 상황에 맞추어서 변질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가 거기서 발견한 근본적인 오류는 무엇보다도 ‘종교성’의 함정입니다. 인간의 ‘종교성’에 맞춰 기독교를, 복음을, 하나님을 해설하려고 하다보니 근원적인 하나님-이해기독교-이해인간의 종교적 심상/행위로 축소되었다는 지적이죠.


2.그는 인간의 경건 혹은 종교행위로 축소된 19세기 개신교 신학 진영에 대해 날카로운 대립전선을 긋습니다. 그가 성서를 펼쳤을 때에 발견한 것은 ‘인간의 종교성’이 아닌, ‘하나님의 신성’이라는 사실이며,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이이였기 때문이죠. 그의 주장에 따르면 19세기 개신교 신학은 옳아봤자 반만 옳았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는 깔뱅의 율법주의적 엄숙함으로 돌아가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신성’을 찬미하고 증언하는 것이 성서이지만, 결국 성서가 증언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이야기이며, 그 인격 안에서 신실한 파트너가 되셨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바르트는 복음 안에서 선포되는 기쁜 소식에 감격합니다. 부족하고 탈 많고 추악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지만, 하나님이 그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음을, 파트너가 되셨음을 소리높입니다. 그리고 그 기쁜 소식 안에서 교회가 창설되며, 이웃에 대한 헌신의 태도를 부여받으며, 복음의 사도적 증인이 된다고 강변합니다. 우리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바로 하나님의 행위 때문에!


3.마지막으로 그는 인간의 자유를 통해 하나님의 자유를 추론하려는 모든 사변적 학설에 반대합니다. 하나님이 자유로우시기에, 우리 인간의 자유를 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니, 오히려 자유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셨기에 우리는 자유롭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자유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며, 그 자유 안에서 교회가 창설된다고 강변합니다. 무엇보다도 거부하는 것은 ‘윤리학’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하나님의 자유를 명제 안에 가두는 것과, 더 나아가 ‘윤리학’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인간의 자유를 명제에 대한 순종에 가두는 것을 거부합니다. 윤리학은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해서는 안된다는 것, 달리 말하자면 윤리학은 하나님의 자유 앞에서 인간이 자유롭게 순종하고 결단하는 것을 윤리학이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인 거죠. 마지막으로 그는 이러한 윤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신학’으로 확장시킵니다. 우리는 자유 안에서 신학을 하는 (모든 직업을 막론하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신학자입니다. 어떤 철학사조나, 신학사조에 지배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반응하고 책임지며, 그 자유의 복음 안에서 부름을 받은 신학자임을 힘껏 강변합니다. 그리고는 자유 앞에서 하나님께 대한 도리를 다하라는 빌립보서 구절로 에세이를 마칩니다.


칼 바르트의 신학 에세이는 말 그대로 복음의 변주입니다. 한 편의 복음강설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그의 신학은 기도하게 만드는 신학인 동시에, 우리의 가슴에 불을 던져주는 신학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선포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신학이었습니다. 

칼 바르트의 신학, 아니 칼 바르트가 전하는 강렬한 복음 메시지를 듣고자 하는 분들께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