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재무관인 에라스도(롬 16:23b, 메시지역)'
로마령 고린도의 두 개의 비문에는 성서를 충실히 읽는 기독교인이라면 유심히 볼만한 인명이 기록되어 있다. 바로 에라스투스(에라스도)! 성서에 기록된 도시 재무관(조영관) 에라스도와 고린도 비문에 기록된 ‘도시 재무관(조영관) 직분을 얻기 위해’ 공을 들였던 에라스도가 같은 인물이지 않을까?
저자는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당시 도시 재무관(조영관)으로 근무했던 그리스도인 에라스도의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서사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가상인물 니가노르다.
니가노르는 선택하는 인물이다. 도시 재무관(조영관)이 되려고 하는 두 인물이 있다. 자신의 주인이었고 여전히 그에게 신의를 베풀고 있는 그리스도인 에라스도과, 그의 반대편에 서있는 전형적인 교활한 로마 귀족 정치인 아이밀리아누스. 니가노르가 에라스도를 선택할 것인가, 혹은 에라스도를 배반하고 아이밀리아누스를 선택할 것인가는 질문은 본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힘이다.
뿐만 아니라 니가노르는 에라스도의 가정에서 모이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변방에 머물러있다. 서사의 중심은 에라스도와 아이밀리아누스의 정치적 대립이지만,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시의적절하게 등장하여 니가노르의 선택에 중요한 변곡점을 제시한다. 이와 함께 니가노르는 에라스도냐 아이밀리아누스냐의 선택과 동시에 기독교 신앙을 선택할 것이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끝내 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의 마지막날인 일요일, 니가노르는 에라스도와 아이밀리아누스 사이에서,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신흥종교에 대한 회의 사이에서, 자신의 인생을 가로지를 선택을 하는 이야기로 본 이야기는 끝이 난다.
벤 위더링턴 3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한 이유는 메인 서사에 있다. 교활한 로마 귀족 정치인 아이밀리아누스는 강자의 자리에서 서사를 종횡무진한다. 반면 그에 비하면 언더독이라 할 수 있는 에라스도는 아이밀리아누스의 계략에 판판히 깨어진다. 하지만 끝내 에라스도는 계략을 이겨내고 승리한다. 익숙하면서도 매력적인 전개는 독자를 잡아끄는 서사의 힘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전략적으로 서사 곳곳에 그레코 로만 사회의 문화와 풍습을 배치한다. 흩어뿌려진 문화와 풍습에 대한 정보엔 친절한 보조 아티클이 따라붙어 설명을 덧붙인다.
물론 본 책은 서사의 재구성이란 측면에서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예컨데 ‘에라스도와 같은 고위직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이교 신전 운영도 도와야 하는 도시 재무관(조영관) 직분을 이행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었는가?’라는 저자의 마지막 질문의 해답은 본 책 속에서 찾을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본 책은 서사, 재구성된 흥미로운 서사로 이뤄져있기 때문이다. 몇몇 역사적 단편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서사를 재구성하다보니 당대의 정황에 대한 치밀한 묘사일 수 없으며, 곳곳에 비약적으로 건너뛰는 부분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당대의 기독교 신앙, 회심, 교회의 모습에 대한 재구성은 단선적일 수 밖에 없다.
본 책은 부제인 ‘바울 사역의 사회적, 문화적 정황’을 탐색하는데는 적격이다. 독자를 몰입시킬 수 있을만큼 흥미롭게 서사를 재구성하면서도, 바울의 사역을 이해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정보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아갸아 총독 갈리오 앞에서 재판당하며, 회당장 소스데네가 두들겨 맞는 장면(행 18:12-17)에 대한 재구성은 본 책이 ‘에라스도’도 아니며, ‘니가노르’도 아닌, 바로 바울과 관련된 책임을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일요일, 에라스도의 집에서 바울은 고린도 13장을 언급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설교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니가노르의 선택을 추동한 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어졌고, 에라스도의 가족에게서 니가노르에게 흘러넘친)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은연히 그려내는 본 설교는 당대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바울 사역’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그려낸다.
본 책은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책 자체로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고, 본 책을 읽은 후에는 신약성서를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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