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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신약

요한복음은 영지주의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by 홍도사 2020. 2. 20.
본 글은 크레이그 키너의 <요한복음 I>의 '제 4장 사회적인 상황'중 여섯 번째 아티클인 '영지주의와 제4복음서'를 읽고 요약하였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크레이그 키너의 요한복음 주석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2세기 말의 교부 이레니우스는 요한복음이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반대 논증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여기서부터 요한복음과 영지주의 사이의 끈끈한 인연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키너는 여기에 의문을 갖습니다. 과연 후대의 교회가 복음서가 기록될 당시의 정황과, 해석할 당시 자신들의 정황을 명확히 구분했을까요?

 

훗날 불트만은 "요한복음은 영지주의 언어를 사용했지만 신학은 반-영지주의"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보른캄은 "시대착오적으로 후대의 범주를 갖고 1세기 배경을 해석"하는 오류라며 반박했습니다. 최근에는 "요한복음이 일종의 원시-영지주의"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즉, 후대의 영지주의 사상을 가능케했던 원시적 단계가 요한복음에서 발견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을 영지주의로 규정짓는 요한복음 고유의 특성인 Antithetical(상반되는), Vertical(수직적인), Dualism(이원론)은 영지주의 뿐 아니라 더 이전의 헬레니즘, 조로아스터교, 고대 근동에서도 발견되는 특성입니다. 오히려 더 유심히 봐야 할 점은 이런 유의 특성이 유대교 사상 및 쿰란, 유대교의 지혜전승에서도 곧잘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더 나아가 요한복음에서 곧잘 발견된다는 영지주의사상이라 말하는 '가현설'은 일찍이 쓰여진 지중해 문학에서 그 양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유대교 및 요한복음은 가현설과는 거리가 멉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이 영지주의라는 견해는 착오라 할 수 있으며, 오히려 영지주의 문서들이 몇몇 부분에서 요한복음에 의존한다는 판단이 더 적실하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도마복음 및 다양한 초기 영지주의 문헌들이 요한복음과 관련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 혹자는 요한복음의 몇몇 사상들은 이런 영지주의 문헌들에 대한 대화를 하고 있지 않냐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상들은 영지주의 자료들을 제외하고도 "필로", "열두 족장들의 유언", "요셉과 아스낫" 등의 당대 헬라 유대인들의 문서를 통해 해명될 수 있습니다. 키너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요한복음의 사상은 필로의 사상과 영지주의 사상의 거리보다 훨씬 더 영지주의 사상과 동떨어져 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유대교와 영지주의 모두와 대화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물론 요한복음은 영지주의화 되고 있는 유대교 혹은 유대교 영지주의라는 특정 사상과 대결하고 있는 늬앙스를 포함합니다. 하지만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영지주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입니다. 영지주의는 역사 속에서 갑자기 등장한 특정 산물이 아닌, 유대교와 기독교 및 중기 플라톤주의 요소들의 혼합물입니다. 더 나아가 요한복음에는 중기 플라톤주의의 요소를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유대교적 사상에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따지고보면 요한복음의 어떤 개념들은 유대교 신비주의와 공유되는 점이 있습니다. 실제 요한복음에서 나타나는 예수에 대한 강조점은 유대교 신비주의 주장에 맞선 것 같은 늬앙스를 포함합니다. 하지만 유대교 신비주의는 엄밀한 의미의 영지주의라 볼 수 없으며, 초기 유대교 신비주의의 형태는 그 어떤 것도 영지주의처럼 창조물과 피조물을 구분하는 경계를 제거하진 않았습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이 영지주의와 대화하고 있다는 주장"보다는 "요한복음은 영지주의와 공통의 유대교 유산을 공유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실할 것입니다.

 

또한 어떤 학자들은 기독교 이전에 이교의 영지주의가 있었고, 그것이 기독교 문헌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주장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습니다. 먼저 기독교 영지주의 특유의 양상들은 기독교 확산 이전에는 그 어떤 문헌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영지주의의 뿌리로 꼽히는 것은 마법 문헌, 중기 플라톤주의, 신비주의, 실현된 유대교의 묵시인데,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모든 영지주의 문헌은 공통적으로 기독교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 이전에 영지주의가 있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영지주의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물론 요한일서와 요한삼서를 읽어보면 영지주의로 치우친 경향들이 요한공동체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은 정통 교회에서 인용되기 전에 영지주의 경향의 이단자들 사이에서 읽힌 전례가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요한문서에 기록된 그노시스의 동사형과 같은 핵심 단어의 용례 자체가 영지주의의 용례 자체와 동떨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요한일서와 요한삼서 내에서 발견된 이단자들의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음을 입증합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 영지주의는 요한복음의 기록에 영향을 줄 위치에 처해 있지 않았다.

  • 다만 요한복음과 영지주의는 공통의 종교적 유산을 공유하고 있다.

  • 또한 영지주의가 요한복음에게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요한복음이 영지주의에게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보다 더 높다

  • 뿐만 아니라 영지주의 경향의 사람들이 요한 공동체 내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도 있지만, 요한 공동체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보다 심각하게 반응하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