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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평]한 그리스도인의 페미니즘 읽기.

by 홍도사 2020. 9. 3.

<종교와 페미니즘, 서로를 알아 가다>, 양혜원.

독특한 책이다.

 

이 책은 목사 사모이자, 번역가이자, 학자이자, 무엇보다도 ‘순례자’요 ‘제자’로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양혜원의 제자가 되어가는 순례과정에 대한 내용이다. 이런 부제를 붙이고 싶어졌다. ‘한 그리스도인의 페미니즘 읽기’

 

저자는 종교와 페미니즘(1장), 이슬람 페미니즘(2장), 유교적 페미니즘(3장)을 차근차근 소개해나가면서 페미니즘은 끝내 모든 여성을 포괄하지는 못한다는 사실과, 더 나아가 페미니즘이 진단하는 사회의 원흉인 가부장제와 그 해결방안이 지구상의 모든 특정 개인 여성에게 해방을 가져다주진 않는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페미니스트가 아닌 복음주의 개신교인으로 남아서 마지막 논지(4장)을 전개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을 선택하지 않고 ‘페미니즘’을 읽고 소비하는 ‘복음주의 개신교인’의 정체성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혹자는 본 책이 결국 ‘복음주의 개신교에게 허락맡은 페미니즘 소개서’ 정도로 혹은 ‘페미니즘에 대한 복음주의 개신교의 반박서’ 정도의 답정너 류의 책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본 책은 ‘이미 정해진 답’을 하기 위해 변증논리를 급조한 류의 책이 아니다.

 

도리어 본 책은 페미니스트가 될 것이냐의 기로에서 끝내 돌아선, ‘양혜원’이란 이름을 가진 복음주의 개신교인의 치열한 고뇌과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기독교인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어요.’라기보다는 ‘기독교인으로 성실하게 제자도를 따라나설 때에 페미니즘이 약속했던 해방을 얻을 수 있더라구요’라고 말하는 책에 가깝다.

 

아마도 대다수의 이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은 페미니즘을 수용할 수 있을까?’ 정도의 맥락에서 본 책을 소비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 그런 류의 의도를 갖고 접근하면 저자의 주장을 곡해하기 쉽고, 다양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장들이 곳곳에서 발견될 것이다.

 

하지만 접근방법을 바꿔보면 어떨까? ‘어떻게 그리스도인은 영적순례의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비롯한 다양한 세속학문들을 참고문헌으로 읽을 수 있을까?’의 관점으로 말이다. 본 책은 그리스도인 양혜원이 온전한 존재로 성장해가는 영적순례의 과정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세속학문을 배우고 또 비판하고 또 수용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진지하고 깊이 고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제자도’의 가치를 절대화시키면서 상대적으로 가치가 폄하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예컨데 낙태의 문제나, 동성혼의 문제나, 여성안수 등의 문제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교회의 교리와 문화를 개혁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도리어 각 개인이 제자도를 충실히 따르면 해소될 문제라고 덧붙인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종교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견지했던 보수적인 입장의 판단을 고수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특정 문화에 대한 보수적인 판단을 철회할 때 무너지는 종교성이라면 이는 보수적인 판단을 고수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종교성을 더욱 강화시켜서 해결할 문제가 아닐까? 더 나아가 보수적인 판단을 철회하는 것이 기독교 가치에 의거한다는 자유주의 개신교의 입장을 수용하지 않더라도, 각 사안에 대한 교회가 지녀야 할 판단에 대한 ‘이해할 수 있는 논리’는 토론을 통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예컨데 여성안수 문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들로 방어되고 있는 실정이니 말이다.

 

저자는 매우 독특한 위치를 지키고 있다. 페미니즘을 공부했지만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여성억압에 대해 뼈저리게 체감한 사람이지만 목사 사모와 아내, 아들을 둔 엄마의 정체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교회적 문화에 있어서 보수적 문화를 고수할 때 교회가 얻는 유익이 매우 크다고 말한다. 또한 그런 보수적 문화 속에서도 래디컬한 실천과 실천에 따른 해방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 책은 다양한 생각과 논쟁을 유발한다. 섣불리 비판하기보다는 저자의 입장을 꼼꼼히 정독하고, 그에 따른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공부를 추구하는 이들에겐 좋은 책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종교와 페미니즘, 서로를 알아 가다 - 8점
양혜원 지음/비아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