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평

[서평]전능하고 선하신 하나님은 왜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by 홍도사 2020. 8. 7.

 

*본 글은 <고난과 하나님의 전능>에 대한 짧은 서평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창조와 악의 잔존>의 내용으로 논지를 보강하면 좋다고 생각하여 그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했습니다.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즉 성경의 하나님이야말로 자신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했던 블레즈 파스칼의 일화는 유명하다. 정말 철학자의 하나님과 성경의 하나님은 다를까? 과연 무엇이 다를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일단 성경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를 덮어둔채로, 모든 만물의 근원이시며, 무소부재하시며,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떠올리게 된다. 모든 만물이 그로부터 났고, 모든 만물이 그로 마치게 될 것이며, 그가 온 세상을 통치한다고 고백하는 여러 성경의 구절들도 떠올린다. 하지만 정말 성경은 하나님을 그 모습 그대로 묘사하고 있을까?

박영식의 <고난과 하나님의 전능>은 철학자의 하나님에 익숙한 이들에게 성경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이다. 물론 시작은 ‘악과 고난’의 문제부터 시작한다.  우리의 인생에서는 수많은 악과 고난의 문제가 있다. 고난을 거치면서 우리는 잘못을 참회하기도 하고,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고, 또한 인격적으로 성숙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아우슈비츠처럼, 세월호처럼, 참회하거나, 배우거나, 성장할 여지조차 닫혀진 고난의 사건을 마주한다.

‘선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만물의 만사를 총괄하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라면 이러한 현실 앞에 우리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양한 고전적인 신정론의 답변이 있었다. 저자는 이런 답변들을 정리한 이후 만신창이가 될때까지 후들겨팬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전적 신정론이 변호하고 있는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증언하고 하나님과는 거리가 있다.

더 나아가 저자는 본회퍼, 몰트만, 과정신학, 칼 바르트, 폴 틸리히, 판넨베르크까지 현대신학 속에서의 논의를 다루며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에 가까이 다가가는 신학적 논의를 통해 철학자의 하나님에 메여있는 신정론 논의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다. 역설적으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은 ‘고난’의 현실 가운데서 인간과 함께 고통당하는 하나님인 동시에, 사랑의 힘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악과 고난’의 문제 앞에서 그 원인을 명확하고 깔끔하게 해명해내는 형이상학적 철학에 근거한 변론에 머물지 않는다. 도리어 기독교 신앙은 ‘악과 고난’의 문제 앞에서 함께 고통당하고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을 힘입어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향해 열어젖히는 ‘역동적인 힘’임을 역설한다. 이는 마치 욥기의 마지막에 묘사된 욥과 같다. 고난의 이유는 해명되지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자신을 괴롭히던 세 친구를 용서하고, 또 이미 죽음을 맞이한 자녀들을 가슴에 묻은 채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힘이다.

물론 본 책은 조직신학 논의를 담아내고 있기에 진정 성경이 고통과 악의 문제 앞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진 않다. 도리어 그 부분에 있어서는 사변적인 측면이 있다. 이를 보충할 수 있는 좋은 책이 있으니 유대교 학자 존 레벤슨의 <하나님의 창조와 악의 잔존>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철학적 논의를 건너뛴 상태에서 본문이 하나님과 또한 악과 고난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주해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예컨데 창세기 1장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도리어 혼돈과 공허가 가득한 악과 고난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악과 고난을 제거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우리에게 악과 고난을 제거하는 일에 참여할 것을 권하고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창조는 하나님만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감당할 영역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창조의 하나님을 호출하며, 또한 영원히 자신을 버리지 않고 붙드시는 언약의 하나님을 호출하며, 하나님의 악과 고난을 퇴치하시는 창조사역 가운데로 호출당한다.

물론 두 책은 모두 쉽지 않은 책이다. <고난과 하나님의 전능>은 조직신학적 사유를 펼쳐가는 책이며, <하나님의 창조와 악의 잔존>은 성서학적 논의를 펼쳐가는 책이기에 둘 다 각 분야에서 전문서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두 책은 서로 상호보완될 여지가 충분한 책이다. <고난과 하나님의 전능>이 우리가 은연 중에 믿는 ‘철학자의 하나님’에 대한 사변을 깨부수고 있다면, <하나님의 창조와 악의 잔존>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의 모습과 그에 참여하는 백성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리해보자. ‘악과 고난’의 현실 앞에서 우리는 간혹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께 왜 그랬냐고 따져 물을 때가 있다. 물론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겠다. 하지만 성경을 좀 더 면밀하게 읽는다면 과거를 토대로 악과 고난의 이유를 되묻기보다는, 도리어 열려진 미래를 향해 전능하신 하나님을 호출하는 것이 마땅한 태도다. 하나님께 고난의 의미를 묻기보단 하나님과 함께 고난에 대항하여 살자. 우리가 믿을 하나님은 보좌 위에서 가만히 앉아서 과거에 일어난 일을 해명하시는 분이 아니라, 악과 고난의 현실 가운데 직접 찾아오셔서 희망찬 미래를 함께 열어젖히실 역동적인 하나님이다.

뿐만 아니라 지나간 고통 속의 숨겨진 의미를 묻는다면 우리는 결코 그 답을 찾을 수 없겠지만, 고통의 현실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과 함께 열려진 미래로 나선다면, 역설적으로 고난이 극복된 이후에 하나님께서 고난의 의미를 불어넣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