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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평]권력을 선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by 홍도사 2022. 1. 19.
<사람의 권력 하나님의 권력>, 앤디 크라우치, 김명윤 역, IVP.

20대 후반 처음 전도사가 되었던 날이 떠오릅니다. 연세가 일흔도 넘은 은퇴권사님께서 저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손자 잘 부탁합니다, 전도사님.” 아직 사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받은 예의 넘치는 어르신의 인사는 <전도사>가 가진 <권력>에 대해 새삼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난날동안 다수 목회자의 권력에 분노하고 비판했지만, 이제는 저 또한 그들과 유사한 권력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알게되었습니다.

우리는 <권력>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에 무척 비범하고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새삼 생각해보면 목사인 저 또한 <권력>을 지니고 있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각자 직장 내의 위계 안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가정 안에서도 부모라는 이유로 혹은 자녀라는 이유로 나름의 <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정치가 존 달버그 액튼 경의 말을 빌어 <권력> 자체가 악이기에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권력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나 이런 주장은 <권력>에 대한 니체와 푸코의 통찰에 빚지고 있습니다. 반면 본 책은 “<권력>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주장으로 시작합니다. 실제 본 책의 영어판 부제는 “Redeeming the Gift of Power”입니다. <권력>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하나님의 구속을 통해) 선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본 책의 뼈대를 이루는 주장입니다.

<권력>을 중심으로 고민을 풀어나가는 본 책은 다양한 주제를 망라합니다. <권력>이 악용될 때에 우리는 본 책의 영어판 원제인 “Playing God”, 이른바 <신 놀음>에 빠집니다. 이는 명백한 우상숭배입니다. 또한 우상숭배는 불의를 조장합니다. 따라서 올바른 선교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동시에, 우상숭배의 문화를 타파하며, 불의한 사회구조 개선에 이르러야 한다는 큰 그림을 담대히 주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통념에 반박하며, <강압>과 <폭력>을 지양하며 <권력>을 선하게 행사하셨음을 소개합니다. 또한 이러한 <권력>의 작동이 기존의 문화 및 사회구조와 결합하여 세계 가운데 뿌리박혀있음을 해설합니다. (이는 <통치자들과 권세>라는 영적전쟁 언어의 해설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고독, 침묵, 금식, 안식일, 희년 등의 고전적 영성훈련 방법을 통해 <권력>을 선용하기 위해 각자의 태도를 길들이는 방법 또한 소개합니다.

본 책은 <권력>에 대한 한 그리스도인의 충실한 성찰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저자는 <권력>을 선용할 수 있는 한 인격으로 뿌리내리기 위해 충실히 고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권력>에 의해 억압되는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사회구조와 문화의 문제, 우상숭배의 불의의 문제 또한 충실히 고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본 책은 <권력>이라는 한정된 주제에서 시작하여 각 개인과 온 세상을 구속하는 복음에 대한 내용을 두루두루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 또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루, 또 하루가 갈수록 제게 주어진 <권력>은 더욱 무거워집니다. 또한 <권력>의 남용으로 교회에 해를 끼치는 목사의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권력>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커집니다. 두려움이 커질 때면 정치가 존 달버그 액튼 경의 말을 인용하며 <권력> 자체가 악이며 유유자적한 선비의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지향점이 아닐까 고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본 책은 권력 자체를 고민하던 저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권력>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그러니 <권력>을 구속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사용하라고, 마치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노획물인 양 중히 여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으니
사람들과 비슷하게 되시어 여느 사람 모양으로 드러나셨도다.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 곧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도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지극히 높이시어
어느 이름보다도 빼어난 이름을 그분에게 내리셨도다.
그리하여 예수의 이름 앞에 천상 지상 지하계 모두가 무릎을 꿇고,
모두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도다.
(빌 2:6-11, 200주년 신약성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