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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평]성서 텍스트의 민낯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by 홍도사 2022. 1. 19.
<공포의 텍스트:성서에 나타난 여성의 희생>, 필리스 트리블, 김지호 역, 도서출판100

필리스 트리블의 <공포의 텍스트>는 성서를 해설해주는 책인 동시에 페미니즘의 시각을 보여주는 (무려 1984년에 출간된) 책입니다. 오늘날처럼 반-페미니즘 광풍이 떠들썩한 시점에 <페미니즘>은 너무 고루해보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본 책은 1984년 한창 여성인권신장이 필요한 시기에 기록되었던 옛날 페미니스트들의 성서읽기 책처럼 치부될 가능성도 다분합니다.

하지만 본 책은 책 제목 그대로 <텍스트>가 담고 있는 <공포의 세계>를 차근차근 해설하며 펼쳐보여주는 책입니다. 특별히 저는 네 개의 챕터 중에서 <하갈>을 다룬 첫 번째 챕터를 읽었습니다. 저자는 <페미니즘>에 근거해 성서 텍스트를 해설하고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뽑아내는 방식을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텍스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공포성>을 직면하는 여정 속으로 독자들을 초청합니다. 그리고 저자가 겪고 있는 당시의 문제성(페미니즘)이 구약성서 텍스트 안에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줄 따름입니다.

<하갈>은 등장부터 사래와의 대립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사래가 <아브라함의 씨>를 갖지 못하자, 한낱 사래가 모략을 꾸미는 <도구>인 씨받이로 등장합니다. 아이를 낳은 이후에는 갈등이 고조되며 사래를 떠나게 됩니다. 저자는 히브리 단어가 갖고 있는 적나라한 묘사를 차근차근 짚어가며 텍스트 내의 하갈이 겪고 있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저자가 읽은 바에 의하면) <하갈>사래의 학대를 당한 여인이며, 아브라함의 방조를 겪은 여인이며, 하나님의 폭력까지 함께 겪은 여인입니다.

후일에 <하갈>은 (이스마엘을 통해)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마저 아브라함에게 빼앗기고, 아들 이스마엘에게 빼앗깁니다. (더 이상 하갈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남겨져있지 않습니다.) 텍스트 자체가 하갈을 학대하는 사라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으며, 텍스트가 묘사하는 하나님의 행위 또한 아브라함-사라 부부의 하갈을 향한 학대를 지지하고 있음을 말 그대로 보여줍니다. 말 그대로 <텍스트> 자체가 갖고 있는 공포성의 실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갈이 겪고 있는 현실이 마치 출애굽의 정황과 닮아있다는 저자의 묘사 또한 꽤 설득력이 높습니다. 하갈이 겪는 추방의 경험은 출애굽의 정황과 닮은듯 보이면서도 그보다 더욱 공포스럽습니다. 저자의 글을 빌리자면 하갈의 경험은 (출애굽의 경험과는 다른) “자유 없는 탈출, 구원 없는 계시, 언약 없는 광야, 나라 없는 방랑, 성취 없는 약속, 돌아갈 데 없는 부당한 추방”입니다. 따라서 하갈이 겪는 공포스러운 상황은, 그에게 폭력를 저지른 아브라함-사라 부부의 회개와 성숙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저자는 하갈의 이야기를 이사야 53장의 메시지와 견주어 읽을 것을 권합니다. “그(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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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구약성경을 신약성경을 중심으로 읽는데 익숙합니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좋은 가이드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구약성경은 구약성경 자체의 서사와 매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 책은 신약성서가 가이드하지 않는, 따라서 거의 설교되지 않는 남겨진 구약성경 텍스트가 갖고있는 민낯을 직면하게 만듭니다. 특별히 첫 번째 챕터는 텍스트 내에서 하갈이라는 한 여인이 겪은 공포성을 차근차근 보여주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물론 본 책은 독서가 까다롭습니다. 성경을 견주어 읽어야 하며 가능하면 원어단어를 함께 살펴봐야 저자의 설득력과, 논지의 몰입감을 직면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분명 본 책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성서본문과, 본문에서 반복되는 언어적 묘사를 따라가며 읽는다면 구약성경 텍스트의 매력을 더욱 맛보게 될 것입니다.

*성서원어를 함께 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웹사이트를 활용하면 더욱 좋겠습니다. (예: Blue Letter Bible)

무엇보다도 저자는 하갈의 텍스트를 읽어낸 이후에, 하갈을 두고 “남성에게 이용당하고 지배 계급 여성에게 학대당한 흑인 여성이며, 대리모이고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거주하는 외국인”과 같다고, 또한 “아내의 지위가 없는 여성파트너고, 가출 청년이며, 괴로움에서 종교로 도피하는 사람” 혹은 “미혼모고, 쫓겨난 아내이며, 아이 딸린 이혼녀고, 주머니에 떡과 물뿐인 떠돌이 여성, 집없는 여성”이며 “권력구조에서 나오는 보조금에 의존하는 궁핍한 사람이고, 생활보호 대상 어머니여,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본인 정체성이 위축되는 자기 없는 여성”이라 묘사합니다.

지금은 하갈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며, 과하게 <페미니즘>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분명 저자가 차근차근 짚어낸 하갈을 묘사한 텍스트의 <공포성>을 직면한다면 어느덧 수긍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본 책은 텍스트가 말하는 바를 진지하게 읽어낼 때, 읽어낸 바가 우리 현실 또한 충실하게 읽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