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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요한복음은 완전히 새롭게 쓰여진 예수 이야기다?

by 홍도사 2022. 9. 14.
외르크 프라이, <요한복음의 신학과 역사 : 전승과 서사>, 이형일 옮김, 새물결플러스.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품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구조적 틀을 파악해야 하며, 문학적 장치들을 발견해야 합니다. 또 틀과 장치 속에 숨어있는 신학적 주제들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성경본문에 대한 꼼꼼한 정독과 더불어 대가들의 가이드가 필요한 일입니다.

마르틴 헹엘의 제자 외르크 프라이의 <요한복음의 신학과 역사:전승과 서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본 책은 대가들의 연구와 씨름하고, 또 요한복음 본문과 씨름한 결실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저자의 명료한 주장이 논리정연하게 펼쳐집니다. 요한복음 연구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아마도 적절한 안내를 제시해주리라 사료됩니다.

본 책은 기본적으로 2018년 1월 예일 신학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예일 셰이퍼 강의>에서 한 강연 내용을 수정 확대한 내용입니다. 그의 책은 기본적으로 1979년에 출간된 J.루이스 마틴의 <요한복음의 역사와 신학>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한때 대다수의 요한복음 연구자들은 요한복음 배후에 있는 공동체의 정황을 재구성하려고 했습니다. J. 루이스 마틴과 레이몬드 E. 브라운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후에 요한복음의 문학적 설계에 대한 연구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연구사를 천천히 살펴본 외르크 프라이는 요한복음 배후에 있는 공동체의 정황을 재구성하려는 모든 시도는 “지나치게 소설적(25)”이었다고 진단합니다. 이어서 그는 역사를 재구성하여 신학으로 나아가려고 했던 이전의 시도가 아닌, 요한복음의 “신학에서 출발하여 역사에 이르는(29)” 연구방법을 따를 것이라 말합니다.

본 책은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 개의 챕터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장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부활 이후에 얻은 보혜사 성령의 통찰에 의해 재구성된 예수의 이야기라는 주장입니다.

각각의 챕터를 간략하게 소개해보겠습니다. 천천히 따라가다보면 요한복음 본문과 씨름하면서 얻은 외르크 프라이의 통찰이 점차 드러날 것입니다.


첫 번째 챕터는 요한복음이 “하나님으로서 예수”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혹자는 마가복음을 비롯한 공관복음은 저기독론이고, 요한복음은 고기독론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최근 논의에 따르면 마가복음조차도 고기독론에 가깝고, 요한복음 이외의 많은 문헌도 고기독론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의 고기독론은 독보적인 면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를 명시적으로 하나님이라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학계의 다양한 논의 중의 하나는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다양한 기독론(엘리야, 예언자, 메시아, 인자 등)의 칭호가 기독론의 발전을 담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이러한 담론들을 (요한복음이)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요한복음의 핵심 메시지에 귀속시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요한복음 본문을 천천히 따져보면 저자의 주장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예수의 첫 번째 표적을 다룬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에서 “때”, “영광” 같은 단어가 등장합니다. 두 번째 표적을 다룬 왕의 신하의 아들 이야기에서도 “때”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처럼 요한복음은 표적을 의도적으로 “영광을 받을 때”, 즉 십자가 사건과 연결시킵니다. 또한 저자는 요한복음 9장의 맹인 내러티브와 11장의 나사로 내러티브에서도 예수의 기적 이야기가 결국에는 십자가 사건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요한복음은 서로 상충되는 두 가지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철저히 인간이셨다는 주장과, 또 다른 하나는 십자가에 달린 그가 하나님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렇게 상충되는 두 주장이 하나일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보혜사 성령으로 말미암은 깨달음일 것입니다.


두 번째 챕터는 요한복음의 자료가 얼마나 역사성을 지니고 있느냐에 대한 내용을 다룹니다.

요한복음이 역사적인 문서인지 신학적인 문서인지에 대해서는 꽤 논쟁적입니다. 오래전부터 성경본문을 비평적으로 보는 학자들은 요한복음을 신학적인 문서로 여겼고, 공관복음에 비해 역사적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구성 자체가 증인들의 증언 위에 기초하고 있다는 리처드 보컴의 주장 이후로 많은 이들이 요한복음 문서 자체의 역사성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에 비해서 유대명절, 관습, 율법, 지리적 특성에 능숙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과 헤롯의 정치적 이해관계 또한 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외르크 프라이는 공관복음 대비 정확한 정보들이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한들, 요한복음이 더 역사적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정보의 개연성이 역사적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예컨대 소설가가 소설을 쓴다 할지라도 사전조사가 치밀하다면 인용된 정보들이 치밀한 개연성을 확보할 수 있을테니까요. 외르크 프라이는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예수의 말씀과 예수의 행적들에는 신학적 색채가 짙다고 주장합니다. 요한복음의 목적 자체가 진실된 역사를 보도하는 것보다는, 당시 있었던 일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주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그는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예수의 말씀과 예수의 행적보다는, 공관복음에 등장하는 예수의 말씀과 예수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더 역사적으로 정확할 개연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그의 주장은 요한복음을 바라보는 과거 비평적 학자들의 주장을 계승하는 동시에, 요한복음에 담겨있는 증언의 맥락을 강조하는 최근 학계의 주장을 일정부분 반박하고 있습니다.그가 보기에 요한복음은 보혜사 성령에게 얻은 깨달음에 의해 재구성된 예수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챕터는 요한복음의 저술목적에 대한 내용을 다룹니다.

앞서 요한복음이 부활 이후 보혜사 성령에게서 얻은 깨달음으로 재구성된 이야기라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역사나 전승에 대한 엄청난 자율성을 어떻게 정당화(225)”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요한복음이 지닌 저술목적에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술목적은 20장 30절-31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31)"는 의도 하에서 선별하여 기록했다고 밝힙니다. 즉 요한복음의 저술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진실에 대한 깨달음에 있습니다. 

외르크 프라이는 이와 연관된 두 구절을 소개합니다. 2장 22절에 등장하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라는 구절과 12장 16절에 등장하는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라는 구절입니다. 즉 제자들은 예수님이 살아계시던 당시에는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사실에도 이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후 보혜사 성령이 강림하여 그들을 깨닫게 해주면서 그들이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진실에 이르렀습니다. 잘 알려진 의심하는 도마 이야기의 결론인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20:29)”는 말씀의 의미도 일맥상통합니다. 직접 목격한다고 다 깨달음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오직 보혜사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진실에 눈을 뜰 수 있다는 겁니다.

외르크 프라이에 따르면 요한복음의 저자는 이미 알고 있던 마가복음의 이야기를 성령의 깨달음에 의해 다소 재구성하여 요한복음에 기록했습니다. 이를테면 마가복음에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15:34)”라고 울부짖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다 이루었다(19:30)”며 승리의 함성을 외칩니다.  또한 마가복음에서는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14:36)”라고 기도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18:11)”라고 단언합니다. 요한복음은 마가복음의 기록에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피하려하셨다는 오해의 모든 가능성을 제거한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요한복음은 시작부터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오셨고, 십자가를 지는 순간이 바로 영광의 때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은 보혜사 성령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의 빛 아래에서 공관복음에 기록된 역사적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재구성하여 서술한 것입니다.


책에 담겨진 내용은 더욱 풍성합니다. 챕터별로 다량의 본문을 심도깊게 다루고 있습니다. 단순한 요한복음에 대한 독특한 시선을 제시하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본문 내에 있는 의미망에 대한 끈질긴 관찰이 돋보입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 필요한 책을 저는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첫 번째는 개론서입니다. 본문에 대한 기본정보를 숙지하는데 필수적입니다. 두 번째는 주석서입니다. 본문을 둘러싼 역사적 논쟁을 정리하고 몇몇 단락 혹은 구절의 의미를 더듬어가는데 매우 유용합니다. 세 번째는 연구서입니다. 본문 전체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성경 본문과 견주어 읽고 나면 본문에 대한 이해는 전혀 이전과 달라집니다.

좋은 개론서는 많습니다. 좋은 주석서도 많습니다. 하지만 좋은 연구서는 생각보다 찾기가 어렵습니다. 제 소견을 감히 말하자면, 외르크 프라이의 <요한복음의 신학과 역사:전승과 서사>는 요한복음에 대한 찾아보기 드문 좋은 연구서입니다. 

본 책을 읽고 난 이후에 적어도 제가 요한복음을 보는 시선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