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8살에 신학을 시작했습니다. 친구들 대다수가 군대를 다녀오고,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학교를 졸업하고, 탄탄한 기업에 취직해서 정착할 무렵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대학교 3학년부터 시작했습니다. 5년 후에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가 되기까지는 8년이나 걸렸습니다. 신학공부를 잘 할 수 있을까, 목회를 잘 할 수 있을까 여러 고민도 많았습니다. 신학을 시작하기 전에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냥 도전했습니다.
신학을 시작하고 난 이후로 저의 삶은 생각보다 잘 풀렸습니다. 글쓰기와 책읽기라는 목사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능력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말하기, 특별히 설교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또 제가 글을 기고했던 인터넷언론이나 SNS에서, 또 교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무척 기분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안했습니다. 제 마음 한 켠에는 여전히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불안이 있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매우, 매우, 매우, 근원적인 불안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있는 불안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사순절을 기념해서 누가복음 본문을 살펴볼까 합니다.
누가복음 4장 1절-13절은 우리가 살펴봤던 마가복음 1장 12-13절의 확장판입니다. 마가복음이 (경상도 스타일로) 거칠고 간략하게 핵심만 짚고 넘어간다면 누가복음은 좀 더 친절하게 과정을 세세하게 설명합니다.
먼저 예수님은 (1절)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상태에서 광야로 입성하셨습니다. 그때 마귀는 (2절)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여기서 시험하다는 말은 <넘어트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유혹하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적에게 기습공격을 당한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시험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첫 번째 시험입니다. (3절)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 맞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누가복음 3장 22절은 예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을 때에 하늘로부터 들려온 소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마귀의 시험은 이 소리의 진의를 의심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 스스로 의심하라고 유혹합니다.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맞냐는 겁니다.
이를 마귀에게 입증할 방법,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예수님이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바로 (3절)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이때 당시 예수님은 (2절) “모드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않은 상태, 즉 40일동안 단식한 상태였습니다. 그때 마귀는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을 떡으로 만들어서 먹는 것 정도는 하나님께서 눈감아주시지 않겠냐며 유혹했던 것입니다.
다음은 두 번째 시험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5절) ”천하 만국을 보이며” 천하 만국을 다스릴만한 “모든 권위와 영광”을 넘겨줄테니 (7절) “절”을 하라고 촉구합니다. 두 번째 시험 또한 본문이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맞냐고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정녕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천하 만국을 다스릴만한 모든 권위와 영광”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현재 40일째 굶주린 상태에 있는, 아무것도 없는 홀홀단신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갖고 있는 유일한 자산이 있다면 “하늘로부터 들려온 소리” 외에는 없습니다. “너는 내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음성 외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입증할만한 어떤 것도 예수님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니 마귀는 예수님께서 절을 하면 하나님의 아들에게 걸맞는 “천하 만국을 다스릴만한 모든 권위와 영광”을 주겠다는 겁니다. 이를 통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됨을 누리고 살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시험입니다. 마귀는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예수님께 말합니다. (9절)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또 한 번 “하나님의 아들”이 맞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누릴 수 있는 돌을 떡으로 만들어 배를 채우는 혜택을 거절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능히 가질 수 있는 “천하 만국을 다스릴만한 모든 권위와 영광”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마귀는 말합니다. “여기서 뛰어내리라”
지금껏 혜택을 거절하고, 권한을 거절했다면, 이제는 보호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겠냐는 겁니다. 여기는 예루살렘 성전이니,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에, 정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높은 곳에서 떨어지더라도 천사를 보내어 예수님을 보호하시는 능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겁니다. 이를 통해 마귀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임을 눈으로 확인하라고 세 번이나 유혹했습니다. 혜택을 누리라고, 권한을 가져보라고, 보호를 경험하라고 말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확인하고 입증하고 싶어하는 우리 인간의 불안에 대한 이야기와 꼭 겹칩니다. 예수님 또한 한 명의 인간이었기에, 마귀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음성>으로만 들은 상태에서 믿으며 살기보다는, 눈으로 보고 확인할 것을 촉구합니다. 불안하지 않냐는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음성은 들었는데 실제 삶은 결코 그에 걸맞는 삶이 아니니 불안하지 않냐는 겁니다. 그러니 눈으로 확인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 번의 유혹을 거절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신분, 자신의 정체성을, 한낱 눈으로 확인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자신이 들었던 음성을 확인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4절)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 않는다”, (8절)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겨야만 한다. (12절)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자신은 눈을 통해 확인하지 않더라도, 들은 말씀에 근거하여 살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대신하여 보여준 모범 사례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눈으로 확인할만한 것들>에 근거하여 살 것을 촉구합니다. 잘생기고 예뻐야 한다고 말합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라고 말합니다.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잘먹고 잘살아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SNS를 통해 직접 잘사는 삶을 자랑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에 근거하여 사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의해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들은 말씀, 읽은 말씀에 근거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지난 수요일부터 부활주일에 이르기까지 주일을 제외한 날짜를 모두 헤아리면 40일입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 40일간의 기간을 <사순절>이라 이름붙입니다. 이 기간 동안 신앙의 선배들은 금식을 하거나, 고행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을 굳건히 다져왔습니다.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 삶의 고행을 거치면서, 스스로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을 더욱 붙들었습니다.
다시 가장 처음에 했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저는 객관적으로 볼 때에 충분히 목사로의 역할을 평균 정도는 감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7년전 섬기던 고등부의 회장이었던 친구의 결혼식을 참석했습니다. 그때 당시 같은 고등부 내에 있었던 친구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주고 받는 과정 속에 저는 스스로가 <목사다워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벌써 시간이 많이 흐르고 능숙해졌다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제 안에는 <불안>이 있습니다. 제가 잘한다는 사실, 제가 잘났다는 사실, 제가 좋은 목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입증하고 싶어하는 <불안>이 항상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입니다. 기록된 말씀, 들은 말씀으로 충분하다고 말입니다. 확인하지 않아도, 눈으로 꼭 보지 않아도, 증명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기쁘고 행복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인생을 살면서 슬프고 아프며 고통스러울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것을 성취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인생을 살면서 소중한 것을 상실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행복할 때나 우울할 때나,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입니다.
사순절 기간만큼은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뿌리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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