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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고난주간 새벽기도 설교문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 금요일

by 홍도사 2022. 4. 15.

요한복음 18:28-40, 19:1-16
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40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중 금요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는 날입니다. 

목요일밤에 잡히셨던 예수님께서는 밤새도록 심문에 시달리시고 결국 끝내는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제국 아래에 있던 다른 민족들에 비해 과한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로마제국은 유대인들을 통치할때 다른 민족들에 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유월절과 같은 <민족적 해방>에 대한 기대와 상상이 모아지는 절기에는 더더욱 조심해야 했습니다. 특별히 당시의 유대인들 다스리던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매우 잔인한 인물인 동시에, 유대인들을 다뤄야 하는 방법을 간파하고 있던 매우 교활한 인물이었습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은 빌라도와 유대인, 그리고 예수님 사이에 일어나는 법정 드라마를 7막으로 구성해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1. 먼저 유대인들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잡힌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갔습니다. 당시는 유월절 기간이기에, 유월절 어린양을 먹기 위해 정결의 전통을 지키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빌라도의 관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빌라도를 만나기를 요구했습니다. 따라서 (29절) 빌라도는 밖으로 나아가 유대인들에게서 예수님을 인계받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이유는 간단합니다. 빌라도의 (31절) “사람을 죽이는 권한”으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을 (30절) 정치적 반란의 의도를 가진 “행악자”라고 고소합니다.
  2. 이어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그가 진정 정치적 반란의 의도를 가진 <행악자>인지 검증합니다. 먼저 그에게 묻습니다. (33절)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은 빌라도의 질문 앞에 자신의 나라가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36절)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하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은 왕입니다.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오신 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알쏭달쏭합니다. 따라서 빌라도는 반문할 따름입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3. 심문을 마친 빌라도는 예수님을 관정에 남겨둔채 밖으로 나아가 대기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공표합니다.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빌라도는 유월절에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 즉 민족적 해방을 꿈꾸는 절기마다 로마제국은 유화정책을 실시했으니, 예수님을 풀어주겠다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아닌 다른 이에게 유화정책을 시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말 그대로 예수님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4. 빌라도의 입장은 철저히 로마총독의 입장입니다. 유월절을 앞둔 유대인들의 격한 정서를 누그러트리지 않으면 반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그는 총독의 지위에서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빌라도는 다시 예수님께로 가서, 그를 채찍질 합니다. 군인들은 그에게 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조롱합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예수님께서 정치적 의도가 없는 무해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공적 재판 과정입니다. 
  5. 온갖 해를 당한 예수님을 드디어 유대인들께 전시하며, 빌라도는 밖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4절) “그에게는 아무런 죄도 찾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가시로 만든 관을 쓰고 조롱이 담긴 자색옷을 입은채로 있습니다. 그리고는 빌라도는 (5절) “보라 이 사람이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은 힘껏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칩니다. 빌라도는 자신이 죄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보기에 정치적으로 범법을 저지를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혐의를 변경합니다. (7절)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다고 말입니다.
  6.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광적인 종교적 열기를 보고 (8절)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따라서 관정 안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간 이후에 그에게 (9절) “어디로부터냐”고 묻습니다. 그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발언한 기원을 묻는 것입니다. 대답이 없는 예수님께 빌라도는 제촉하자,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11절) “위에서” 기원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사건 또한 <천상>의 섭리였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말하고 있지만, 본문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도 <천상>의 관점에서 본 사건을 볼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7. 마지막으로 빌라도는 유대인들과 마주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무죄방면하려고 하였으나 유월절 기간 동안 광적인 유대인들의 열정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12절) 예수님을 죽이지 않는다면 이는 반란을 방조하는 행위이며 끝내는 <가이사의 충신>이라 말할 수 없다며 빌라도를 정치적으로 압박합니다. 결국 빌라도는 (14절) 유월절 준비일에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며 “보라 너희 왕이로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은 (15절)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껏 살펴본 7막의 드라마는 관저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또한 빌라도가 유대인과 예수님을 넘나들며 장면이 다이나믹하게 전개됩니다. 드라마의 전개과정 가운데 알 수 있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빌라도는 전개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무죄를 확신한다는 점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의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의도가 매우 광적이라는 점입니다.

본 드라마는 흥미롭게도 유대인들의 광적인 신념과 빌라도의 무죄에 대한 신념이 교차하면서, 결국 끝내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7막의 드라마의 가장 중심부에 속하는 4막의 장면을 다시 곱씹어봅시다. 빌라도와 군인들은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상상하는 군사적 정치적 메시아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채찍질을 하고 모욕을 줍니다. 또한 조롱하기 위해 그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힙니다. 그에게 "유대인의 왕"이라며 그의 평화를 조롱하는 광경은, 오히려 그가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면 너무도 좋겠다는 로마제국 특유의 오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역설입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왕으로 오셨습니다. 다만 폭력으로 정복하고, 힘의 방식으로 지배하는, <로마의 통치방식>에 근거해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희생하고, 섬기며, 자신을 내어주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방식>에 근거한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가 <로마의 통치방식>에 근거한 왕으로 오셨다면, 그의 통치는 영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벨론이 무너지고, 페르시아가 무너진 바와 같이, 로마도 무너질 것이며, 예수의 나라도 무너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나라는 <세상의 속한 나라>이지 않습니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영존한 나라 <하나님 나라>그 바로 그의 나라입니다. 그는 희생하고, 섬기며, 자신을 내어주는 방식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유대인의 왕>은 이미 왔습니다. 희생과 섬김과 자기 내어줌의 방식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왕은 이미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유대인의 왕>은 유대인들이 환영하지 않습니다. 7막의 드라마는 표면적으로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고, 그 결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심문받는 대상은 바로 유대인들과 대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은 빌라도가 (14절) 예수님을 유대인들의 <왕>이라고 증언함에도 불구하고, (15절)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빌라도에게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며 정치적으로 압박을 가한 유대인들은, 역으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니라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결국 본 이야기는 예수님의 왕되심을 선언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예수님의 왕되심의 특성을 해설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유대인들의 오만함과 무지함을 폭로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성금요일,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라는 역설적인 방식으로 왕위에 즉위하는 광경을 지켜봅니다. 수난이며 치욕인 것 같지만 이는 영광이요 은혜였습니다. 그를 왕으로 모셔야 할 유대인들은 <가이사>를 모시고 있었으며, 그를 미워하고 박해해야 할 빌라도는 그가 바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금요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가리키며 "이 사람을 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사람>이 받고 있는 수치와 치욕 속에서 <영광과 은혜>를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성금요일은 무척 슬프고 우울하며 참혹한 날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예수님께서 왕으로 즉위하시는 영광스러운 광경입니다. 이는 <천상>으로부터 설계되어, <천상>의 뜻이 <천상>에서 이룬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뤄진 결과입니다.

성금요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저 사람이야말로 왕이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고백하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