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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구약

에스겔은 어떤 사람이였을까?

by 홍도사 2016. 10. 24.


에스겔은 주전 622년 요시야의 종교개혁과 함께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요시야가 율법을 발견하였을 그 어느 즈음에, 에스겔은 요람에 있었다. 그리고 요시야의 종교개혁과 함께 일어나던 남유다의 영적 갱신 운동의 분위기를 머금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야웨도 무심하신지, 그런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요시야의 전사와 함께 중단되었다. 급격히 남유다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의 역사와 역행하는 흐름을 취해버렸다. 그리고 점점 멸망의 증후가 남유다에 드리워졌다.


당대의 예레미야는 이런 반역사적 흐름 앞에 저항한 선지자였다. 그는 예루살렘이, 시온이 궁극적으로는 망할 것이라고 외쳤다. 그는 제사장 출신이었지만, 제사장일 수 없었다. 그는 주류 계통의 사람이지만, 주류일 수 없었다. 이런 예레미야의 통렬한 외침을 들으며 자라났던 에스겔 또한 선택해야 했다. 그도 제사장 가문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삶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시점에서) 예레미야의 노선을 선택하고, 그의 통렬한 외침을 흡수하며 성장했던 것 같다.


서른 살, 드디어 안수를 받고 제사장으로 등극해야 할 그 시점에 그는 바벨론 그발강 가에 있었다. 여호야긴의 친애굽 정책은 결국 바벨론의 침공을 불러왔다. 그리고 대다수의 고위층들은 1차적으로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왔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그리고 5년 후에는 실제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가 제사장으로 시작해야 할 그 시점에, 그는 그 바벨론 그발강 가에서 환상을 본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만연하던 이방의 종교적 심상을 변용한, 이른바 야웨의 영광을 본다. 야웨는 바로 그 곳에 있었다. 자신들이 끌려왔던 이방땅인 바벨론에 있었다. 바벨론의 권력을 뒷받침해주던 종교적 심상은 야웨 앞에 복속해서, 야웨의 충직한 스랍으로 변모해있었다. 그리고 야웨는 저 보좌 위에서 정적으로 다스리는 분인 동시에, 전후좌우로 이동할 수 있는 바퀴로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는 역동적인 하나님이심을 스스로 드러내셨다. 그리고는 이제, 저 백성을 향해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라고 말씀하셨다.


제사장이 되어야 할 그 시기에 예언자가 된 에스겔.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본 그 시점에 예루살렘의 멸망을 위해 선포하라는 메시지를 위탁받은 에스겔.

그리고 이제는 예레미야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에스겔.


그는 정녕 어떤 사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