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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구약

레위기 성경공부 마지막 강의

by 홍도사 2022. 7. 12.

성막의 의미...?

출애굽기 24장에는 <시내산에 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이스라엘이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흥미롭게도 시내산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됩니다. 산꼭대기와, 산기슭과, 산 아래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모세와 여호수아는 산꼭대기로 나아가 하나님을 뵙습니다. 반면 아론 및 나답과 아비후 및 장로들은 산기슭에서 기다립니다. 응당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아래에 머물고 있습니다. (참고로 모세가 여전히 산꼭대기에 있을 때에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저지르게 됩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산꼭대기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뵌 모세가 <성막>에 대한 지침을 듣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결국 성막은 무엇일까요? <시내산에 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의 <장막> 중으로 내려오셔서 거하시겠다는 결단의 결과물입니다. 응당 산꼭대기와, 산기슭과, 산 아래로 구분된 세 단계는 지성소와 성소와 뜰로 형상화됩니다. 올라갈수록 하나님 계신 보좌에 가까워졌던 수직적 구조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하나님 계신 보좌에 가까워지는 수평적 구조로 변형된 것입니다.

모세의 성막, 솔로몬의 성전, 그리고 오늘날의 교회까지. 이 모든 것들의 핵심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겠다>는 결단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말인 동시에,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세운 <성막>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신 사건은, 공식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 사건인 동시에,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레위기의 제사법이 기록된 이유?

출애굽기 40장에는 <성막>이 완성되고 하나님께서 <성막> 가운데 영광을 나타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어서 일종의 <위기>가 발생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여,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40:34-35)고 기록합니다. (*참고로 성막과 회막의 차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회막을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정도의 신학적 의미가 덧붙여진 성막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시내산 꼭대기>에도 아무나 쉽게 들어올 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지성소에도 아무나 쉽게 들어오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제사법이 등장합니다.

실제 레위기 서두의 내용 대부분은(레위기 1-9) 제사법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러한 제사법에 근거하여 첫 번째 제사장을 세우고, 첫 번째 제사를 드릴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와 제물을 받으시는 광경으로 이어집니다. 이어서 등장하는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 또한 의미는 동일합니다. 제사법을 어기는 경우에는 누구든지 죽임을 당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막>의 지역이 오염되며, 오염이 심할 경우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실 수 있다경고의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제 에스겔 8-10장은 <성전>이 오염되어 하나님의 임재가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가는 광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막에서 지켜야 할 <제사법>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방의 목적>입니다. 제사를 드려야 할 규정을 잘 준수함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존중하는 경외심을 갖고 이를 기반으로 <오염>을 방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만일 실수로 말미암아 실제 성막에 <오염>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해결의 목적>을 위해 성막의 <오염>을 정화하는 속죄제를 드립니다. 레위기 서두에는 성막의 오염을 정화하는 <속죄제>를 뜰과 성소가 오염된 경우에 한정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레위기 10장에서 나답과 아비후로 말미암아 지성소가 오염된 상황이 발생한 이후에는 끝내 (레위기 16장에서) 지성소를 정화하는 <속죄제>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무엇보다 이를 매년 (속죄일에) 반복함으로 성전정화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메시지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주어집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년 속죄일에 온전한 제사를 드렸더라면 에스겔8-10장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번제 소나 양이나 염소, 혹은 비둘기를 하나님께 온전히 태워드리는 제사.
(감사, 회개, 서원 등등 모든 경우에 있어서 전방위적으로 드려진 제사의 기본꼴)
소제 번제와 동일한 제사로 곡식물을 하나님께 온전히 태워드리는 제사.
화목제 소나 양이나 염소를 공동체 구성원과 함께 나눠먹기 위해 드리는 제사.
(기름 및 콩팥과 같은 일부만 하나님께 태워드림)
속죄제 공동체의 범죄로 말미암아 오염된 성막의 구역(성소 혹은 뜰)을 정화하기 위한 제사.
속건제 공동체의 범죄로 말미암아 생긴 피해를 공식적으로 배상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

 

레위기 전체 서사의 핵심 메시지?

레위기는 기본적으로 완성된 성막 가운데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레위기의 히브리어 이름인 <바 이크라>처럼 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책입니다. 큰 틀에서 보면 두 번의 죽음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첫 번째는 <성막>이라는 거룩한 하나님의 공간 내에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을 받아 사망한 사건입니다. 두 번째는 <성막>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만홀히 여겨 하나님을 저주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직접 심판하라고 명령하신 사건입니다. 두 사건은 유사하면서도 다릅니다. 하나는 <성막>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며, 또 다른 하나는 <성막> 외부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신 사건이며,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간접적으로 심판하신 사건입니다.

10 나답과 아비후가 벌을 받아서 죽어버리다.
11-15 정결법 : 성막에서 죽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규례들
16 속죄일 : 속죄제를 통해 매년 지성소를 정화하도록 합시다!
17-23 성결법 : 성막 바깥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규례들
(물론 성막에서 지켜야 할 몇몇 규례들이 포함되어 있음.)
24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한 사람을 죽여버리다.

, <레위기><성막> 내에서 지켜야 할 <제사법>만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온전한 예배를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에서 <제사법>을 지키는 것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윤리적 기준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제대로 예배드린만큼, 제대로 살아내야 합니다. 이는 서로 상반되어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똑바로 예배를 드린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똑바로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 앞에서 온전히 살아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예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장막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온 세상을 향합니다.

 

레위기가 들려주는 이스라엘 백성의 꿈 : 안식년과 희년.

오늘날도 빈부격차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예언자들에 의해 제기된 대다수의 문제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 문제>, 이스라엘 사회의 <빈부격차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 대다수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돌볼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를 통해 구체적인 빈부격차가 해소되기 때문이며, 이 문제해결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컨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훗날에 상급으로 보답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적선을 구하는 나그네가 사실은 하나님의 방문이라 생각했던 기록도 성경 곳곳에 있습니다.

레위기의 핵심부인 레위기 16장이 속죄일에 지성소를 정화하는 속죄제를 통하여, 혹여나 모를 성막의 오염을 방지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시지 않게 하는 일을 매년 반복하라고 말하고 있다면, 반복되는 속죄일과 함께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바로 안식년과 희년(레위기 25)입니다. 곡식을 거둔지 6년이 지난 7년째 되는 해에는 애써 경작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밭에서 나는 소출을 모든 이들과 나눌 것을 요구합니다. <안식년>에는 우리의 소득을 이웃과 함께 나눌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또한 <안식년>이 일곱 번에 달할 경우에는 <속죄일>에 나팔을 불고는 (50년째에) <희년>을 선포하고 출애굽 직후에 분배된 규정대로 토지를 재분배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른바 각자 50년 동안 쌓은 자산을 이웃과 함께 나눠가지라는 겁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니 말입니다!

물론 따져보면 실질적으로 준수하기 어려운 규정입니다. 흉년과 풍년을 반복하는 농사인데, 어떻게 이스라엘 온 백성이 7년마다 한 번은 농사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땅을 휴경해도 곡물이 난다 한들, 그 곡물로 모든 백성들이 먹고 살기에는 부족했을 것입니다. 또한 출애굽 당시의 분배 규정을 지키는 것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어떤 가문은 숫자가 늘어났을 것이며, 어떤 가문은 몰락했을 것입니다. 또한 국가의 흥망성쇠에 따라 국가 영토의 범위는 날로 변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년>이든 <희년>이든 문자 그대로 규정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학자들 또한 준수했을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이웃 앞에 살아가는 윤리적 삶>을 연결시킨 레위기의 핵심 메시지의 또 다른 측면입니다. 레위기의 핵심부라 할 수 있는 레위기 16장의 속죄일이 <성막 대정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거하실 수 있도록 애쓸 것을 말하고 있다면, 레위기 25장의 안식년과 희년은 <소득 및 자산 재분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거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내부의 <빈부격차>를 해결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레위기에서 <성전 정화>는 곧 <빈부격차 해소>라고 볼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예언자들이 포로기의 원인을 빈부격차 문제라고 울부짖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