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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구약

창세기 1장의 창조이야기 : 이제 우리의 차례다.

by 홍도사 2022. 1. 23.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하늘과 땅과 이 세계에 모든 속한 것을 지으신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대인의 관점>에서 볼 때에 간혹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이를 오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을 들여다보겠습니다. 1장 2절은 창조 직전의 광경을 묘사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합니다. 질서가 잡혀있지 않으며 텅 비어있다는 말입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계십니다. 전체적인 광경은 황폐한 모습입니다. 철저히 무너지고 폐해가 된 모습입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관점>에서 천지창조를 생각할 때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하나님이 마치 마술사처럼 나타나셔서 이것저것을 새롭게 지으셨다고 상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1장 2절을 들여다보십시오.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에 이미 땅이 있습니다. 어두움이 있습니다. 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 직전의 세계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철저히 무너지고 폐해가 된 공간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일종의 <수리공>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무너지고 폐허가 된 세상을 고치는 방법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질서가 잡히지 않는 곳에는 질서를 부여하십니다. 텅 비어있는 곳은 채워넣으십니다. 일종의 혼돈을 정복하고, 공허를 정복하는 두 가지의 방법으로 세상을 고쳐나갑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혼돈>을 정복하는 시간입니다. <빛이 있으라>말씀하신 하나님의 첫째 날 사역의 핵심은 4절입니다. 빛과 어둠의 경계를 구분하셨습니다. 둘째 날 하신 사역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에게 경계를 부여하십니다. 고대인들은 하늘 위에도 물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가 내릴 때에는 하늘 위의 물이 떨어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의 경계를 구분하셨습니다. 셋째 날 하신 일도 분명합니다. 땅과 바다의 경계를 구분하셨습니다.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천지창조가 시작되기 전의 세상은 빛과 어둠의 경계가 세워져있지 않았습니다. 땅과 하늘의 경계가 세워져있지 않았습니다. 땅과 바다의 경계가 세워져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을 두고 <혼돈한 세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 <혼돈>을 정복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공허>를 정복하십니다. 경계가 정해진 세상 가운데 차곡차곡 그에 합당한 피조물을 채워넣는 작업입니다. 첫째 날에 빛과 어둠의 경계를 구분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넷째 날에 이르러 빛에 합당한 광명체와 어둠에 합당한 광명체를 만드셔서 구분된 경계 안에다 두십니다. 둘째 날에 하늘을 통해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의 경계를 구분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다섯 째 날에 이르러 물에는 생물, 하늘에는 새를 지으셔서 구분된 경계 안에서 살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22절)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땅과 바다의 경계를 구분하신 여섯 째날에 이르러 가축과 짐승을 지으시고는 구분된 땅의 경계 안에다 두십니다. 하지만 창조사역, 수리공 하나님의 황폐한 세상을 고치시는 사역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26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의 창조권한인 <통치>의 권한을 위임하시길 원하십니다. (28절) 사람에게도 평범한 피조물과 동등하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할 것>을 요구하시며, 거기다 덧해서 <정복>과 <다스림>을 요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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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에 담긴 창조서사는 <창조>가 무엇인지 다시 곱씹어보게 만듭니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 속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를 말하지 않습니다. 엉망진창이 되고 황폐한 세계 가운데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워가고, 무질서로 말미암아 그곳에 생육하고 번성하며 충만하지 못했던 피조물들을 다시 살게하는 작업이 바로 <창조>입니다. 따라서 <창조>는 <회복>입니다. 구약성경이 한 권의 책으로 집필된 시기를 대략 <포로기> 이후로 잡습니다. 한 번 상상을 해보십시다. 그들은 자신의 땅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하던 그들이 바벨론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살아야 할 그 땅은 이미 버려진채로 있었고, 그들은 전혀 생경한 바벨론땅으로 끌려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믿고 신뢰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였을까요? 그들이 의지하고 기도를 통해 일어나라고 촉구해야 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였을까요?

창세기 첫 장이 바로 엉망진창의 황폐한 세계를 다시 고쳐나가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포로기 시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뢰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모습은 바로 질서가 무너진 세상 가운데 다시 강림하셔서 질서를 세우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또한 본래 살아야 할 그 땅의 피조물들이 쫓겨난 사실을 방기하지 아니하고, 다시 그 땅의 영역 가운데로 되돌리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장의 창조주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고, 인간은 수혜만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세상을 고치시는 임무,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워나가고 세상을 회복하시는 임무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창세기 첫 장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질서를 다잡으신 이야기,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피조물들을 돌려놓으신 이야기를 들려준 이후에 창세기 1장은 그 임무와 사역을 이제 <인간>에게 맡기셨다는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 이는 인간이 이 피조세계의 지배자라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지금껏 하나님께서 무너진 질서와 법도를 다시 세워나가시고, 모든 피조물들을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회복하셨던 그 업무가 이제는 인간에게로 위임되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닮아 무너진 질서와 법도를 다시 세워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피조세계를 되돌려나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핵심은 바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심으로 무너졌던 질서가 다시 세워지며, 하나님이 <말씀>하심으로 피조물들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귀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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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말씀>이신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세상 가운데 행하셨던 모든 일은 창조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무너지고 황폐한 세상 가운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세상을 고쳐나가셨습니다. 혼돈한 세상 가운데 오셔서 질서를 세우시며, 공허한 세상 가운데 오셔서 피조물들을 채워넣으시는 창세기 1장의 하나님과 동일한 모습으로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고쳐나가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고쳐나가시는 매우 독특한 스타일 하나를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회복시키시지만, <말씀>이신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십자가의 방식으로 세상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창세기 1장으로부터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는 기나긴 서사는 다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초청합니다. 자기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피조세계를 고쳐나가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일 가운데 구체적으로 참여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황폐한 세상입니다. 무너진 세상입니다. 굳건해야 할 질서가 무너진 세상이며, 다양한 피조물들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이탈한 세상입니다. 각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이 원래 있었던 모양대로 회복되기를 갈망하는 세상입니다. 더군다나 코로나 팬더믹 상황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켰습니다. 빈익빈부익부가 가속화되면서 계층 사이의 장벽인 더욱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 속에서 창세기 1장을 다시 읽습니다.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이야기, 피조물들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복원시키는 하나님의 이야기, 그들이 원래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생육하고 번성할 것을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 그리고 창세기 1장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 기나긴 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자신을 내어주신 이야기로 귀결될 것까지 우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가운데 은밀이 외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십시오. 자기를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워나가고,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회복시키는 일들 가운데, 바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자기를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 또한 자기를 내어줌을 통해 세상을 회복시키는 일들 가운데 부름받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응답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