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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평]예언과 묵시:묵시문학 연구의 이정표를 제시하다.

by 홍도사 2016. 11. 26.
예언과 묵시:묵시문학 연구의 이정표를 제시하다.

[서평] 스티븐 L. 쿡, 『예언과 묵시』 (새물결플러스, 2016)



들어가는 말.

 

본 책은 일반인들에게 어려울 수 있는 학술서적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특히 구약, 묵시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큰 영감을 선사하는 책입니다. 크게 두 분의 추천사를 인용하자면 김근주는 성서 본문의 이면에 생생한 현실 사회와 그 사회 내부의 갈등과 희망을 본문에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차준희는 묵시 문학이 지배 계층의 이념적 이데올로기라는 관점에서 묵시 문학을 새롭게 바라보고 이에 대한 균형을 잡는책이라는 점에서 추천합니다. 정리하자면 본 책은 묵시문학 중에서도 (저자가 정의하는) 원묵시문학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전문서적입니다. 그 안에는 묵시문학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에 대한 학문적 반박이 있고, 또한 묵시문학이 담지하고 있는 사회현상에 대한 치밀한 연구가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묵시문학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묵은 오해가 있습니다. 먼저는 이스라엘에서 묵시 사상이 부상했던 이유를 페르시아의 영향과 관련(27)’짓는 오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소외된 분파의 문학적 표현(39)’으로 간주하는 오해입니다. 저자는 본 책을 통해 본 오해에 대해서 페르시아의 이원론에 의존했다는 설명이 부적절하다는 점과 묵시문학의 삶의 자리인 천년왕국 집단은 박탈과 함께 일어날 수도 있고, 박탈 없이도 일어날 수(98)’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자의 주장에 근거해서 묵시문학의 개론을 꼼꼼히 공부하려면 대한기독교 서회에서 나온 묵시문학(대한기독교서회, 2015)를 읽어보면 좋습니다. 묵시문학(대한기독교서회, 2015)이 좋은 개론서라면, 본 책은 정리된 개론서가 나오기까지의 본문과의 씨름 과정이 담겨있는 연구서입니다. 저자는 먼저 자신의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에 완전히 발달된 묵시 사상과 확실한 유사성을 보이는 페르시아 시대의 종교적 텍스트, 관점, 관습을 묘사(73)’하는 본문을 원묵시본문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는 이사야 38-39, 스가랴 1-8, 요엘서를 원묵시본문으로 선택하고는 이를 두고 치열하게 씨름하는데요. 본 서평에서는 스가랴 파트를 중심으로 저자의 고민과 씨름의 흔적을 간단히 소개해보겠습니다.

 

스가랴 1-8장은 원묵시본문인가?

 

스가랴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그동안의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저자가 대화하기로 한 학자는 크게 두 명의 학자입니다. 먼저 벨하우젠인데요. 그는 스가랴의 두 부분이 상반된 이데올로기(203)’를 보인다고 주장한 학자입니다. 더 나아가서 폴 핸슨과도 대화하는데요. 그는 벨하우젠의 논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스가랴 1-8장이 사독계 성직자들이 정치프로그램을 지지하며 대변(204-5)’하고 있다면 스가랴 9-14장은 성직자 정치와 그들이 주도했던 성전제의에 반대하던 반체제 집단의 산물(205)’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저자는 스가랴 1-8장안에도 원묵시본문의 요소로 1)묵시 문학의 요소가 있다는 사실2)급진적 종말론의 요소가 있다는 사실3)이원론의 묘사가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1)스가랴 1-8장과 9-14장은 연속성이 짙다는 사실2)결론적으로 스가랴 1-8장은 원묵시본문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먼저 스가랴 1-8장에는 대장장이 환상(1:18-21)이 등장합니다. 저자는 이 환상에 등장하는 위협하다(הַחֲר)와 내던지다(ידה)는 동사(209)’에 주목합니다. 그리고는 이 동사를 통해 언급된 대리인들에 의해 열방에 임할 묵시적 파멸이 생생히 그려지고 있다(209)’고 주장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스가랴 1-8장 안의 많은 부분(1:11, 1:21, 2:5, 2:11, 5:3-4)모두 역사를 초월해 일어나는 하나님의 직접적 묵시적 개입과 희망이 없는 역사의 종말(211)’을 가리키고 있다고 정리하면서 스가랴 1-8장에 드리워진 묵시문학의 요소와 급진적 종말의 요소를 밝혀냅니다.

 

더 나아가서 대장장이 환상(1:18-21)에는 대장장이와 뿔의 대립된 그림이 나오는데요. 이를 두고 저자는 대장장이와 뿔이라는 이원론적 그림은 선과 악을 대치(213)’시킨다고 정리합니다. 더 나아가 그는 본문의 이면에 격렬한 이원론적 세계관이 드리운다고 말합니다. ‘스가랴의 세계관으로 보자면 오직 두 진영 밖에 없다. 하나님의 성읍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편에 선 자들과 음녀 바빌로니아의 반-성전에서 악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두 진영 사이의 투쟁은 던지다(שְׁלֵ֛ך)는 동사를 두 번 사용하는 스가랴 5:8에서 분명해진다(214)’

 

정리하자면 스가랴 1-8장은 1)묵시문학의 요소를 갖고 있고 2)급진적 종말의 요소도 갖고 있으며 3)이원론적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기에 원묵시본문임에 틀림없다는 거죠.

 

특별히 저자는 스가랴 1-8장과 9-4장의 연속성을 주장하기 위해 메시아 대망에 주목합니다. 먼저 스가랴 4장을 주목하는데요. 스가랴 4장의 일부는 초기에 개작된 흔적이 보이는 본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본문에서 스가랴 집단이 천년왕국적인 이원 제도를 기대했을 때 그 한편은 다윗계 후손을 향해 열려있었다(219)’고 지적합니다. 더 나아가 스가랴 6:11절을 해설하기를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들을 만들어 그 중 하나는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다른 하나의 왕관은 성전에 머물면서 그 가지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다(221)’고 말합니다. , 이미 스가랴 1-8장이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머금고 있다는 거죠. 저자는 정리하기를 스가랴 텍스트가 성직자 정치의 기득권 수용이 아닌 다가오는 메시아의 통치를 지향하고 있다(221)’고 말합니다. 정리하자면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중심으로 1-8장과 9-14장은 연속성을 띄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1-8장과 9-14장이 이어지는 본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자는 둘 사이의 단절을 받아들입니다. 다만 뚜렷한 연속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거죠. 특히나 9-14장에서는 묵시문학적 특색이 두드러지는데요. 그럼에도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중심으로 1-8장과 9-14장이 연속성을 띄고 있다는 주장에 근거하면 스가랴 1-8장은 9-14장의 묵시본문으로 나아가기 이전의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에 완전히 발달된 묵시 사상과 확실한 유사성을 보이는 페르시아 시대의 종교적 텍스트, 관점, 관습을 묘사(73)’원묵시본문이라는 겁니다.

 

스가랴 텍스트 이면에는 누가 있는가?

 

이제 1-8장과 9-14장 사이의 묵은 오해와 편견들을 제거했으니 저자는 본문이 담지하고 있는 사회학적 단서로 이동합니다. 그리고는 그 단서로부터 당시의 사회학적 정황을 재구성하는 것이죠. 저자는 원묵시본문인 스가랴 1-8장 안에 있는 구절(1:8, 1:18, 2:1, 3:1, 4:1, 4:2, 5:1, 5:9, 6:1)속에서 성전 제의의 의례와 예배로부터 자신의 표현을 차용(230)’했음이 틀림없다고 주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형식뿐만 아니라 담겨진 내용을 보더라도 스가랴 1-8장은 중앙 제사장들의 산물(230)’이라고 주장합니다. 더군다나 시온 신학과 제사장직에 대한 초점(234)'을 담고 있는 제사장 여호수아에 관한 네 번째 환상에 묻어나는 스가랴 1-8장이 예루살렘 제사장 지도층 집단 내에서 전수되고 메시아적으로 해석되었다는 강한 흔적(234)‘을 고려한다면 이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스가랴 1-8장 이면에는 당시의 제사장 지도층이 있습니다. 이는 저자가 앞의 2장과 3장에서 정리한 묵시문학의 삶의 자리인 천년왕국 집단은 박탈과 함께 일어날 수도 있고, 박탈 없이도 일어날 수(98)’있다는 근거를 통해서 본다면 더욱 명확합니다. 우리의 묵시문학에 대한 일반적 오해와는 달리 당시의 집권층인 제사장에 의해서 천년왕국의 프로그램과 묵시문학이 탄생되었다는 주장이니까요.

 

더 나아가 저자는 스가랴 1-8장 이면에 있는 집단과는 일종의 시간적 거리를 보여주는 스가랴 9-14장의 집단에도 주목합니다. 마찬가지로 텍스트를 통해 분석해볼 때 이들은 이전의 집단과는 달리 행적조직과 거기에 협력한 제사장들과 갈라섰음(336)’을 암시합니다. 이를테면 스가랴 1-8장의 집단의 천년왕국 프로그램이 성전 재건, 중앙 제의 회복, 사회 중심부 법전의 시행을 포함(335)’ 주장하고 있었다면, 스가랴 9-14장의 집단은 페르시아 시대 유다를 책임지던(261)’ 공공지도자들을 비판하며 비다윗계 공적 통치 세력들과 이에 협력했던 제사장들로부터 분리(263)’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물론 그들이 제의와 성전에는 반대하지 않았(263)’고 아마도 집단의 역사 내내 성전에서의 활동(264)’을 지속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나가는 말.

 

본 책은 원묵시본문으로 세 개의 본문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본문을 바라보는 통념을 깨뜨리는 반면, 더 나아가 본문이 담지하고 있던 사회적 상황을 재구성합니다. 이를 통해 저자는 페르시아 때의 종말론이 당시 제의와 어떤 관계인가 하는 문제(341)’를 다루면서 당시의 성전제의는 천년왕국 종말론을 포용할만큼 탄력적(341)’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저자는 묵시문학과, 그 이면의 천년왕국 집단이 소외집단이라는 기존의 오해와 통념에 반박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동안 부각되지 못했던 포로기 이후 특히 제사장 계열 사이에서 일어난 서기관 주의의 중요성(341)’또한 확증하고 있습니다.

 

성서본문을 직접 분석한 책이기에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본 책은 성서연구의 기본은 텍스트 분석이라는 원칙에 탄탄히 근거한 책입니다. 그리고 그 원칙에 근거하여 텍스트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아집을 깨트리는 모본을 보여준 책입니다. 더 나아가서 묵시문학의 특성으로 규정되어진 온갖 오독과 몰이해의 장막을 걷어야 할 이정표를 제시한 책입니다. 따라서 본 책은 성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큰 영감과 통찰을 제공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해석의 아집을 뚫고 본문을 명확하게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큰 인사이트를 제공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앞으로 묵시본문을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 입장에서도 중요한 오해 몇 가지를 걷어낼 책입니다.

 

본 연구서가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신학도들에게 좋은 벗이 되어, 한국교회의 가볍고도 아집이 만연한 성서해석의 풍토를 걷어내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홍동우 / 부산장신대학교 M.Div 

학생과 전도사의 경계, 부산과 대구의 경계, 보수적 기독교와 진보적 기독교의 경계, 

인문학과 신학의 경계 사이에서 양자와 서로 대화하며, 갈팡질팡 방황하는 한 평범한 청년 전도사이자 경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