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보다 성경.
우리는 일반적으로 성경을 펼치면서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일견 타당한 질문이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유효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앞서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를 탐독하는데 있어서 자료가 되는 ‘복음서’가 무엇이냐는 문제죠. ‘복음서’의 장르에 대한, ‘복음서’라는 문서에 대한 이해가 없이 바로 ‘예수’에 대해 탐독한다면 우리의 연구는 결함을 가진 연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중들 사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주 흥미로웠던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서가 있습니다. 나름 대학교 시절에 읽고 참 감명 깊었던 책인데요.
통째로 예수 읽기 - 김진 지음/왕의서재 |
이런 유의 책은 사실 많습니다. 아주 흥미롭고 구미를 당기게 하는 책이죠.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기적을 행하고,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부터 구원하는 예수에 비해서 아주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매력적인 예수와, 교회에서 가르치는 (천박한 신앙의) 예수는 서로 모양이 닮아있습니다. 성경이라는 자료 속에서 자신들이 보고 싶은, 자신들에게 와닿는, 자신들이 선호하는 자료만을 가져와서 재구성한 작품이거든요.
물론 모든 예수에 대한 재구성은 선호도와 개인의 시각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흥미로운) 예수 연구는 이른바 ‘객관성’보다는 ‘주관성’ 쪽에 많이 치우쳐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라이트의 경우에는 아예 처음부터 예수를 재구성하겠다고 넌지시 밝히며 연구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복음서는 무슨 장르인가?
핵심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바로 복음서가 어떤 장르냐의 문제에 있는거죠. 만약 예수에 대한 자료가 어마어마하게 산적해있다면 말이 다를겁니다. 서로 다른 자료들을 교차검증하면서 예수에 대한 이미지를 재구성할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몇몇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다른 문서들도 끌고 오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결국 복음서입니다. 장르가 비슷한 책들을 모아놓고 교차검증을 한다는 것, 그래서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한다는 것. 일견 괜찮은 방법론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예수를 묻기 위해 복음서를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먼저 물어야할 것은 바로 복음서는 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쓰여졌냐는 질문이죠.
공관복음서 이해 - 키트 F.니클 지음, 이형의 옮김/대한기독교서회 |
본 책은 공관복음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주 탁월한 입문서입니다. 일반적으로 복음서를 공부할 때 많은 이들이 역사적 예수로 방향을 선회하거나, 혹은 권위 있는 주석부터 펼쳐봅니다. 그닐카의 국제주석도 있고, 조엘 마커스의 앵커 바이블도 있죠. 하지만 각론으로 파헤쳐 들어가기 전에 전체적인 지형도를 살피는게 중요합니다. 니클의 책은 이 지점에 있어서 탁월합니다.
신약총론 - |
그리고 절판된 책이기도 하지만 본 책의 앞부분에 걸쳐서 나오는 몇 장의 도표와 그림은 복음서 이해를 하는데 있어서 아주 깔끔한 정리를 도와줍니다. 단순히 우리가 비평방법을 거부하거나, 혹은 마음에 닿는 비평방법을 선용합니다. 하지만 그런 비평들이 결국 무엇을 밝히느냐의 문제이며, 더 나아가서 복음서의 무엇을 밝혀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안겨줍니다.
이렇게 복음서 자체에 대한 이해, 기본기를 다졌다면 다음으로 넘어갈 차례입니다. 복음서 자체를 탐독하겠다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일단은 성경이다.
저희 학교에서 Q복음을 전공하신 신약학 김형동 교수님은 성경읽기를 매우 강조하십니다. 학자들의 말은 때로는 사변에 불과하다는 말을 많이 하죠. 실제로 복음서에 대한 연구를 보면 그런 지점이 아주 많습니다. 모든 연구란 것이 결국 데이터를 한정적으로 선택하고 연구에 들어갑니다. 이를테면 예수의 어록이라던가, 비유라던가 딱 한정적으로 잡고 아주 독특한 해석을 추구하죠. 물론 그런 연구들은 다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질문은, 핵심적 질문은 그게 아닙니다. 바로 복음서가 무엇을 말하느냐죠.
한 권의 복음서 전체의 플롯, 등장인물, 주제, 이런 것들이 우리에겐 더욱 중요합니다.
따라서 복음서 자체를 꾸준히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서 한 권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는 일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복음서 공부를 하면서 크게 범하는 실수는 두 가지입니다. 마가복음 (외의 그 어떤 복음서라도) 하나만 공부하지 않고 복음서 전체를 엉성하게 연결지어 공부하는 경우, 그리고 전체의 플롯을 파악하지 않고 예수의 말씀이나 비유 혹은 난해구절 위주로 복음서를 공부하는 경우입니다. 그런 식으로 공부하면 복음서 자체의 플롯은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앞의 니클 책이나 성종현의 책의 내용을 충분히 탐독했다면 한 가지는 건져야만 합니다. 각각의 복음서는 고유의 사상을 전달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고, 이를 위해서 각자 수사학적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각각의 복음서가 말하는 예수 이전에, 각각의 복음서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복음서 읽기와 곁들여서 해야 할 작업이 있습니다. 좋은 개론서를 펼쳐보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마가복음을 개관하는 좋은 개론서는 다음의 책이였습니다. 물론 니클의 책도 좋습니다.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약성경 개론 - 마르틴 에브너 & 슈테판 슈라이버 지음, 이종한 옮김/분도출판사 |
개론서를 보면서 우리가 파악해야 할 점은 성경 전체의 단락과 구조에 대한 학자들의 통찰을 숙지하는 일입니다. 또한 개론서에서 짤막하게 넘어가는 성경인용 정보들을 애써 찾아서 표기해두는 일입니다. 저작연도, 저작시기, 주제, 신학적 논지, 플롯 등등의 짧고도 굵직한 정보들이 (별 가치가 없는 것처럼) 지나가는데 이런 것들을 표기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더 나아가 이런 것들을 표기해두고 숙지해두면 복음서 읽기에 있어서 큰 자산으로 작동할겁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은 본문 자체가 익숙해질 수 있도록 꾸준히 읽는 일입니다. 장과 절을 달달 외우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본문 전체의 변곡점이 어디인지를 파악하고, 또 언제쯤 등장인물이 새롭게 등장하는지, 이런 것을 숙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가복음의 경우에는 언제쯤 십자가에 메달리는지, 언제쯤 예루살렘으로 상경하는지, 언제쯤 예루살렘에 도착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굳이 장과 절로 기억하는 것도 좋고, 아니면 내용 자체로 기억하는 것도 좋습니다.
마가복음을 탐독하기.
저의 경우에는 공부가 짧아서 마가복음 조금, 그리고 요한복음 조금, 그리고 나머지 복음서는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마가복음의 예시만 들어서 복음서 공부법을 조금 나누고자 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복음서를 탐독하고 지형을 파악했다면 이제는 대가들이 어떻게 복음서를 탐독했는지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정보를 읽어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눈으로 봐서는 알 수 없는 다양한 메타포들이 어떻게 산적해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죠.
이 책은 저에게 최고의 책입니다. 마가 자체를 숙지하고 공부하는데 있어서 큰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마가의 예수이야기 - 베르너 H.켈버/한국신학연구소 |
그리고 마가복음을 읽는데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는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별로였습니다. (아마도 대충 숙지하고 있었던 내용이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구요.) 하지만 많은 이들이 추천하는 책입니다.
이야기 마가 - 데이빗 로즈 외 지음, 양재훈 옮김/이레서원 |
그 외에도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도움을 받았던 기억은 있는데 (무슨 도움을 받았는지에 대해) 자세한 기억은 나질 않네요.
신약의 윤리적 비전 - 리처드 헤이스 지음, 유승원 옮김/IVP |
마르코 복음 이해 - 최승정 지음/생활성서사 |
다만 중요한 것은 성서신학책을 읽으면서 인용되는 성서구절을 하나하나 탐독하고 비교해보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과연 신학자들이 어떻게 복음서를 읽었는지를 맛보는게 참 중요하죠.
예수가 아닌 공동체의 이야기.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불트만이 했던 이야기입니다. 복음서는 예수 자신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객관적으로, 실증적으로 쌈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서는 자신이 서 있는 교회의 정황에서, 자신들이 실존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며 변증하길 원했던 예수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역사적 예수라기보다는 신앙의 예수를 전달하고 있는 책이죠.
결국 이를 위해서는 예수가 누구냐의 질문보다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 더 나아가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를 기록한 그 공동체가 어떤 환경에 있었고, 그들은 어떤 예수를 믿었느냐는 질문이 더 유효하고, 중요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복음서의 교회정치학 - 게르트 타이센 지음, 류호성 외 옮김/대한기독교서회 |
그런 맥락에서 타이센의 책은 (독특한 관점이긴 하지만) 이런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 답하고 있습니다. 사실 켈버의 책 또한 그런 유의 책이기도 하구요.
사실 저도 복음서를 모두 탐독하고 제대로 연구한 사람은 아니여서 소개하고 길잡이를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나름의 시행착오와 고민을 거치면서 정리한 몇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자체를 충실히 읽을 것, 그리고 권위 있는 신학자의 책을 탐독하면서 인용된 구절들을 천천히 모두 따라가 볼 것. 이렇게만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복음서에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도 복음서는 우리에게 그가 담아내고 있는 예수를 고스란히 돌려내줄 것입니다.
다만 역사적 예수처럼 ‘그 예수가 아닌 이 예수가 진짜야!’라는 식의 답변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이런 예수를 따라 살자’는 겸허한 답변을 내려주겠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답변이야말로 복음서의 기록의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추신. 장신대 입시생들을 위해 성경을 가르치는 모죽사의 김현진 선생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저는 복음서 연구와 공부를 거의 그 분께 빚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추천 목록 중에서 굵직한 많은 책들 또한 그 분께서 추천해주신 책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빚지며 그렇게 사는 사람들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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